◎“기회와 도전”… 주민노력에 달려 지자제출범이 바로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자제는 기회이자 도전이다. 영욕과 파란으로 점철된 헌정사를 겪으며 권력의 중앙화에 길들여져오고 왜곡된 지역감정에 물들어온 우리의 정치문화를 감안하면 더욱 더 그러하다. 지자제의 전면실시가 이에 수반할 충격을 흡수하며 지방경영시대의 새장을 열 수 있을지를 쉽게 장담하기 힘든게 엄연한 현실이다. 지역에 따라 재정자립도가 엄청난 편차를 보여 열악한 자치단체의 연쇄파산이 우려되는가 하면 뿌리깊은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국토가 파당적으로 분할되는 상황도 단지 기우만은 아니다. 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사이의 일어날수 있는 갈등의 해소방안등이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지 않아 곳곳에서 소모적인 긴장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자치단체를 이권집단화하려는 지역토착세력들의 발호문제도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의 지자제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자면 상당한 시행착오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산하는 지자체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단체장이 숱하게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지자제성공을 위한 조건들을 짚어본다.
◎재원자립/세원늘리기등 적극적인 자구노력 필요
지방의 취약한 재정자립도는 지자제의 성공적 정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우선 지적된다. 현재 완벽한 재정자립도를 갖추고 있는 자치단체는 서울과 경기도의 한두곳을 빼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재정의 상당부분을 중앙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불균형한 국토개발로 인해 지역간 경제력 격차가 심각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본격적인 지자제가 실시되더라도 외부의 재정지원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앙에 대한 의존도는 쉽게 개선되기 어렵다. 중앙이 자치단체의 목줄을 쥐고 있는 한 순수한 의미의 지자제는 요원할 수도 있다.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선 역시 각 자치단체가 본격적인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이는 지방의 경쟁력강화와 일맥상통한다. 조세정책의 전환을 통해 지방세원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각 자치단체별로 경제력 제고를 위한 자구책이 필요하다. 결국 자치단체간의 경쟁에 따라 기업유치및 새로운 업종개발의 노력이 가속화 될 수밖에 없다. 재정자립은 지자제 성공의 조건이지만 잘하면 지방을 활성화시키는 결정적 동인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이기/극심한 이해대립 우려 제도적 보완책을
지자제의 여러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지역이기주의는 대표적인 부정적 효과로 꼽히고 있다. 지자제가 본격 실시될 경우 지역이기주의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지역이기주의는 이미 우리사회의 심각한 병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핵폐기물처리장은 물론 생활쓰레기 처리장에 이르기까지 혐오시설의 유입에 반대하는 각 지방의 목소리 때문에 이들 시설이 갈 곳을 못찾아 떠도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자제가 본격 실시될 경우 이같은 부작용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더욱이 생활권이 인접한 자치단체들이 사소한 이해관계나 감정대립등으로 부딪칠 경우 주민들의 불편과 행정의 비효율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미 이같은 부작용을 우려해 시·군간 행정구역개편이 실시됐으나 지역이기주의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따라서 인접 자치단체간의 공동개발과 업무조정등을 위한 개별적인 노력뿐 아니라 이를 중재하기 위한 중앙 또는 상위자치단체의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앞서 지역이기주의를 탈피하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지역감정/치명적독소 소지 「우리동네출신」깨야
한국정치의 최대함정은 지역감정이다. 영·호남으로 갈리는 「대지역감정」은 수차례의 대통령선거를 거치며 극도로 악화돼왔다. 지역감정 앞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통하지 않는다. 『지역감정에는 장사가 없다』는 자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진다.
지자제에서도 지역감정은 치명적인 독소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 대선이나 총선에서 드러난 「영남=여당, 호남=야당」의 파행적인 구도가 지자제선거에서도 재연될 우려가 크다. 부산시장은 여당후보가, 광주시장은 야당후보가 선출되는게 우리 현실이다.
또한 시장·군수선거에서 「우리 동네출신」이라는 소지역감정이 판을 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능력있는 인사가 떨어질 수도 있으며, 선거양태도 정책공약 보다는 저질스런 인신공격으로 흐를 우려가 높다. 이처럼 선거결과가 대지역감정과 소지역감정으로 좌우될 경우 지자제는 절름발이신세가 될수밖에 없다.
선거후에도 지역감정은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줄 수 있다. 일부지역의 단체장들은 「지역감정의 수혜자」로 평가절하돼 권위를 갖추지 못해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토호비리/주민감시·엄정사정·투명 행정 필수
토호들의 비리가능성은 지자제의 건전한 작용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인천북구청 세금횡령사건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듯 일부 지방공무원과 유지, 기업가등이 결탁한 부패구조는 우리가 안고 있는 뿌리깊은 지역병폐다. 이들은 각종 이권사업과 인사문제에 개입, 서로 특혜를 주고받는 배타적 먹이사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지자제의 실시는 지방행정에 대한 중앙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이같은 토호비리가 오히려 확대재생산 될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여건이 제공되는 측면도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새로 선출될 자치단체장의 경우 연임등 정치적 장래문제 때문에 지역 기득권층인 토호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할 소지가 적지 않다. 지자제의 본정신을 뿌리부터 흔들 수도 있는 이같은 암적 요소를 척결하려면 단체장의 강력한 개혁의지와 투명한 행정이 우선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드러난 비리를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엄정한 사정활동도 중요하다. 여기에다가 지자제시대에 걸맞는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감시활동과 신고정신도 요청된다. 중앙정부의 제도적 대책마련을 통한 적절한 견제도 필요하다.<유성식기자>유성식기자>
◎정치독립/「지구당 장공천」등 선거구조개혁 이뤄야
선거에는 행정논리 보다는 항상 정치논리가 우세하다. 우선 당선이 절박하기때문에 장기적으로 성과가 생기는 「공통분담」의 정책보다는 즉효의 인기정책이 구미에 당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진지한 공약은 뒷전에 밀리고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이 난무할 우려가 많다. 따라서 이번 지자제에서도 허황된 정치논리가 횡행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중앙정치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강한 여건도 자칫 파행적인 지자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자치단체장의 공천을 중앙당이 장악하고, 중앙당은 이를 토대로 선거후 지방정부의 행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우려도 있다. 선거직은 숙명적으로 다음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공천권을 갖고 있는 중앙당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중앙당이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은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지역을 위한 지방행정」이 「중앙정치를 위한 지방행정」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는 지자제의 좌초나 다름없다. 따라서 지자제는 가급적 정치논리에서 벗어나고 공천등의 선거예비절차도 지구당 차원에서 결정되는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앙과 관계/분권화전제 국가차원 균형관계 설정을
지자제가 정착되면 지방정부는 과거 중앙집권체제 때와는 전혀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 지방정부는 더 이상 대통령이나 내무장관의 지시 한마디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지방의 일은 지방정부가 처리하고 이에 대한 책임도 지는 분권화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중앙정부를 위해 지방이 희생되는 일은 줄어들고 지방실정을 모르는 중앙중심의 계획은 실효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는 아울러 지역문제에 보다 신축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독자주의가 지자제 전체를 뒤흔들 우려도 있다. 국가차원의 계획이나 발전전략이 지방이기주의에 가로막혀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역으로 중앙정부가 취약한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를 이용해 계속 군림하려 들 수도 있다.
실제 호남이나 일부 중부권에서는 야당출신의 도지사나 시장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과 중앙이 적정한 룰을 만들지 않는다면 예기치 못한 혼선이 생길 수도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지방정부는 국가차원의 중앙정부 입장을 수용하는 균형관계가 설정돼야 한다. 이 경우 분명한 것은 지방분권화라는 지자제 기본정신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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