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재산권문제등 산적/무협의로 해결 바람직/「대립의식」도 상호이해통해 치유 황해도 용연출신인 김기식(76·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분단 50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꿈에 그리던 고향땅을 생전에 밟을수 있을까. 생이별한 아내와는…몽금포 해수욕장부근 열마지기 남짓한 밭은 찾을 수 있는건지」 통일이 가까워지는듯 하니 오히려 여러가지 일에 신경이 쓰인다.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김씨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혼란이 예상되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남북의 이질화된 법과 제도를 통합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주체사상으로 극단적으로 갈린 이념속에 살아 온 남북한 주민의 의식·규범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한층 중차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통일에 대비,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준비해야할 사항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통일분위기가 무르익어 남북 주민의 왕래가 증가하면 출입경관리, 민·형사분쟁 처리절차등의 원칙이 세워져야 하고 돌발적인 북한체제 붕괴에 따른 탈북주민의 처리방안도 당장 마련돼야 한다. 인적·물적 교류를 위해서 시급히 정비해야할 것으로 꼽히는 법령만도 1백40개 이상이다.
통일이 돼 이산가족의 재결합이 이루어지면 친족·상속문제부터 복잡해진다. 심지어 남북에 다같이 아내와 자녀를 둔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이산가족들의 재산권분쟁과 무상몰수된 토지등의 재분배나 소유권이전문제도 말썽의 소지가 크다. 신속한 법질서 확립을 위해 법무·사법기구의 통합과 재편이 이루어져야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모든 법체계가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것이다. 이같은 방대한 작업은 통일이전부터 남북간 협의를 통해 준비작업이 시작돼야 그나마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북은 법적으로는 서로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어 첫 매듭을 푸는일부터 간단치 않다. 우리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북한도 헌법 5조에「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외세를 물리치고…」라고 명시해 놓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헌법 4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주체사상을 자기생활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고 명시, 사실상 노동당규약을 헌법에 우선시키고 있다. 이같은 「반법치주의」도 법적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남북관계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처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에 규정된 법률실무협의회를 통해 논의를 진전시킬 것을 강조한다.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기본규범및 의식을 동질화해야 한다. 남북은 반세기동안 완전히 다른 가치체계를 발전시켜 각자의 기준으로 보면 1백년 이상의 간극을 갖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법의 제정과 운용권을 당의 정책에 예속시켰고 각종 관행과 의식은 「주체사상」의 틀에 묶어 놓았다. 의식의 동질화를 위해서는 모순된 이념체계를 통합하는 새로운 이념체계를 창출해야한다. 그러나 이념의 통합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우리 국민들은 통일의 방식을 떠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국가원칙을 통일의 기본조건으로 간주하고 있다. 통일이 민족의 숙원이지만 자유와 평등,사유재산권을 포함하는 기본적 권리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스스로도 이를 완벽히 실현해 국민적 기본규범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정희경기자>정희경기자>
◎대법 통일법제담당 김상균 판사/재판제도 조정·소송절차통합 연구/“북개방땐 기본골격파악 어렵지않아”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통일과정의 핵심은 법과 제도의 통합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통일을 정치적 문제로만 인식, 제도적 통합을 준비하는데 소홀했던 것같습니다』
지난해 9월 구성된 대법원 사법정책실의 통일법제담당 김상균(김상균·37)판사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법제통합 연구에 뒤늦게 뛰어든 만큼 할 일도 많고 어깨도 무겁다』고 말한다.
사법정책실에서 연구중인 주요과제는 통일후 신분제도와 재판제도의 정비, 재산권분쟁 처리와 관련한 등기·소송절차의 통합문제등이다. 김판사는 『아직은 국내외 자료를 수집·정리하는 수준이지만 2월께 자문기구인 「특수사법제도연구위원회」가 구성되고 전담판사도 1∼2명 충원되면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같다』고 밝혔다.
북한법제연구의 가장 큰 장애는 절대적인 정보량의 부족이다. 단적인 예로 북한내 재판소의 숫자도 60∼2백여개로 추측이 엇갈린다. 재판소 소재지는 아예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김판사는 『우리의 정보수집능력도 문제지만 법대생들조차 법전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판례도 「대외비」로 취급되는 북한사회의 극단적 폐쇄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같은 폐쇄성이 한편으론 이점이 될 수도 있다고 김판사는 전망한다. 사회가 폐쇄적인 만큼 조직과 제도도 단순해 일단 대외개방이 되면 기본 골격을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북한사회의 개방을 어떻게, 얼마나 빨리 앞당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판사는 북한이 최근 형법에 이어 민사소송법을 개정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외국투자유치를 위한 법령정비의 흔적이 엿보이는등 북한사회의 조심스런 변화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일이라면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태도는 북한의 개방과 통일을 지연시키는 올가미가 될 뿐』이라며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부추겨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희정기자>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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