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둥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결코 씻을수없는 천형… 돌아가신 분들위해 기도/김일성 사죄없이 사망 원통… 열심히 살아 속죄 새해를 맞을 때면 통일을 향한 염원때문에 시름에 젖는 이들이 이 땅에는 많다.
김현희(32)의 시름은 그중 유난히 깊고 절실하다. 「KAL기 폭파범」이란 낙인이 천형처럼 따르는 그에게 통일은 여느 실향민들처럼 이산의 한을 씻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통일을 그리는 마음도 비할 데 없이 간절하다.
세모에 만난 김현희는 『북에 있을 때는 그토록 많은 줄 몰랐던 실향민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빨리 이뤄져야 합니다. 가족과 헤어진지 8년째, 항상 부모님 걱정뿐입니다』 그의 부모도 이제 육순을 넘겼다.
그동안 그는 사면의 명분이었던 「폭파주범 김일성부자의 죄상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의 역할에 충실했다. 기독교 신자가 돼 신앙간증을 하고 안보강연도 다닌다. 자신의 범행과 북의 실상을 밝히는 글도 쓰고 책도 냈다.
『저를 사면해 준데 보답하는 길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되돌아 보고 싶지 않은 과거에 대한 책을 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격려편지를 보내 올 때 보람도 느낍니다』
그는 이 남쪽 동포들과의 만남에서 실향민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통일에 대한 염원이 절박하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통일되면 금강산 구경할 수 있다」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북한과의 통일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김일성의 사망등 국제정세가 많이 달라져 어느 순간 통일이 도래할 지 모릅니다』
통일이 되면 그 자신의 처지는 달라질까. 희생자 유족들은 그의 죄과를 용서할 수 있을까. 『북한주민들은 제 처지를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유족분들에게는 무엇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김현희는 김일성의 죽음에 대해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일성때문에 제 인생이 이렇게 됐고, 그런데도 사죄 한마디 안하고 그냥 죽어 제 죄를 씻을 길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김현희는 91년 출간한 수기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가 1백만부에 가까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성공을 거뒀다. 남쪽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을 일기형식으로 쓴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도 엮어 냈다. 그러나 이 책들의 성공후 「김현희가 부자가 됐다」는 식의 보도가 거듭되고 미모와 행복한 듯한 사생활이 부각되면서 유족들과 사회 일각의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때문에 지난해 그는 언론을 통해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지냈다.
『부담스럽고 부자유스런 것도 있고, 훌쩍 떠나 무인도 같은데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순간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죄인인 저를 살려 새롭게 생명을 준 국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현희는 그의 다짐대로 살고 있다. 「평범한 여자」가 되고자하는 그의 통일염원을 막는 장애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와 헤어졌다.<강병태기자>강병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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