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과 불안속에 묻혀 산 한해였다. 울분이 어찌 없었겠는가. 1년을 마치 10년이나 산 것 같다. 이 해의 낙조는 차라리 비창하다. 어수선한 과거의 파편들은 돌아보기조차 어지럽다. 그렇다고 망각에 묻어둘 수도 없다. 파란곡절의 회한과 반성은 지금까지 큰 아픔으로 남아있다. 지난 불행과 비극은 굳이 외면할 일이 아니다.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희망을 잉태하리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허위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싶다. 그래야 우리네 실상과 현실을 냉엄하게 투시할 수가 있다. 그래야 팽배한 냉소주의와 낭패감에 빠진 국민우울증의 치유가 가능할 것이다. 내일을 여는 단서를 여기서 찾아 마땅하다.
지난 1년은 의욕과 달리 긍정보다 부정이 우세했음을 체험해야 했다. 상상을 넘어선 반인간, 반문명, 반사회 현상이 연쇄적으로 돌발하면서 삶의 활력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인륜과 안전의 위협이 나라를 흔들기라도 할 것 같았다.
먼저 인륜이 무너졌다. 부모를 살해한 패륜의 전율은 삶의 가치에 대한 회의와 함께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반인륜은 거듭 반인간으로 이어졌다.
사람의 생명을 파리목숨처럼 해치운 지존파나 온보현 사건은 우리를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신음은 또 다른 대형사고로 충격을 불렀다.
다리붕괴, 가스폭발, 유람선의 불길은 불안을 증폭할대로 증폭시켰다. 무너진 성수대교는 바로 우리네 실상의 상징이자 놀라운 경고가 아니겠는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반문명의 보복에 다름 아닌 것이다. 허망하고 부끄럽다.
반사회 현상 또한 극에 달했다. 전국의 세도 발호는 개혁과 사정을 퇴색케 하며 공직의 부패상이 어떤가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어찌 도세뿐일까, 공금이 있는 곳엔 검은 손이 있다. 누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막막하다. 불신이 번지지 않았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따름이다.
이제 우리는 허세를 부린 가면무도회에 지나치게 도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더 이상 숨기고 버틸 수가 없는 노릇이다. 허세의 탈은 벗어 던지고 실질과 겸손을 맞이해 들여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자면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시련과 고통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좌절을 겪어 보아야 새 희망이 약동한다. 회한과 반성이 있다면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볼만 하다.
우리는 반인간, 반문명, 반사회라는 부정의 현실을 박차고 나서 긍정의 세계로 방향타를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냉소와 좌절의식을 극복하고 새해의 지평을 여는 냉철함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