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부발표 10·26상황 일부 달라”/김재규,차실장에 “짜식 넌… 건방져” 총쏴/박대통령에 “정치 대국적…” 말한적 없어 79년 10·26당시 박정희대통령 시해현장에 있었던 「그때 그사람」의 가수 심수봉씨가 15년만에 회고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밝혔다.
심씨는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사랑밖에는 난 몰라」(문예당간)출판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대통령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라」고 진언했고,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버러지 같은 놈」이라며 총을 쏘았다는 등 그간 정설로 알려진 내용은 합동수사본부의 각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심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궁정동에 가게 됐나.
『10월26일 아침 중앙정보부 박선호 의전과장이라는 사람이 「오늘 저희 부장님께서 윗분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시는데 나와주셔야 하겠습니다」고 전화를 걸어와 약속장소인 내자호텔에서 까만 관용차를 타고 미리 와 기다리던 신재순과 궁정동에 도착했다』
―시해사건 발생 전 만찬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방에 들어서자 박대통령이 정면으로 보였다. 대통령은 리모컨으로 TV채널을 돌리는데만 열중해 있고 우리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차실장이 「각하, 시간이 되면 제가 틀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도 모두 얼굴이 굳어 있었다. 7시 저녁뉴스에 삽교천방조제 준공식행사 내용이 나온후, 방한한 미국방장관이 신민당 총재자격을 박탈당한 김영삼씨를 당수자격으로 찾아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의 기분은 어땠나.
『대통령이 이 보도를 보고 「당수는 무슨 당수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며 TV를 꺼버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안절부절못했다. 대통령이 침묵을 깨려는듯 내 이름을 묻고 「노래나 하나 해 봐라」고 분부했다. 내가 「그때 그사람」등 3곡을 부르자 대통령이 나에게 노래할 사람을 지명하라고 해 김부장 표정이 너무 어두워 시킬 엄두를 못내고 차실장을 지명했다. 차실장이 도라지 타령을 불렀는데, 그 때 누군가가 들어와 김부장에게 귓속말을 전하자 김부장이 밖으로 나갔다. 차실장에게 지명된 신양이 「사랑해 당신을」을 부르고 대통령도 몸의 긴장을 풀고 따라불러 좌중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김부장이 다시 들어와 앉았는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김부장이 들어와 어떻게 했나.
『신양이 노래를 계속 불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김부장이 「짜식, 넌 너무 건방져」라며 차실장에게 총을 발사했다. 차실장의 오른쪽 손목 아래부분에 구멍이 뚫렸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벌떡 일어나 줄행랑을 치듯 방을 빠져 나갔다』
―김부장이 「대국적인 정치를 하라」면서 김실장과 차실장을 좌우 손으로 치며 잘 보필하라고 했다는데.
『그렇지 않다. 김부장은 이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 사태 발생후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수사관들이 「예, 아니오」식 대답만을 요구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밝힐 수 없었다』
―김부장이 대통령에게 어떻게 총을 쏘았나.
『대통령은 끔찍한 소란 속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정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차실장을 쏜 김부장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고 뒷걸음질치며 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발사했다. 김부장은 제정신이 아닌듯 대통령을 향해 또 총을 발사했으나 「철컥」소리만 나고 불발이었다. 김부장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후 상황은.
『김부장이 나가고 차실장은 어쩔줄 모르고 「저사람 왜저러지」라고 외치며화장실로 들어가는 순간 방안의 전등이 나갔다. 김부장이 「야, 불켜」라고 고함쳤다. 신양이 「괜찮으세요」라고 묻자, 대통령이 자세를 흐트리지 않은채 또박 또박 「음,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목에서 「크르륵 크르르르륵」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차마 자리를 뜰 수가 없어 대통령을 부축하고 「누구좀 와줘요. 거기 밖에 누구 없어요」하고 울부짖었다. 나갔던 조명이 갑자기 들어오며 차실장이 뒷걸음질로 방에 들어왔다. 김부장이 바로 차실장의 코 앞에서 권총을 겨누며 따라 들어왔다. 차실장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무기가 될만한 물건을 찾다가 직사각형모양의 탁자를 집어들어 김부장에게 돌진하며 휘둘렀다.
「탕 탕 탕」, 연달아 총이 발사됐고 차실장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김부장이 다시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나와 대통령 사이를 발로 떼어놓고 들어와 50㎝도 안되는 거리에서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철컥」불발이었다. 김부장이 방에 들어와 있던 박의전과장에게 권총을 넘겨 받아 발사했다』
―대통령이 시해된 뒤 어떻게 그 자리를 빠져나왔나.
『동물적인 본능으로 방을 뛰쳐 나왔다. 방밖 복도엔 벽을 향해 등을 보인채 김실장이 서 있었다. 중정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어느 방안엔가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잠시후 바로 옆방에서 들리듯 뚜렷하게 「각하 괜찮으십니까, 각하 괜찮으십니까」라고 김실장이 말하는 것이 들렸다』
―궁정동을 어떻게 나왔나.
『박의전과장이 「오늘 있었던 일을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며 「일이 잘되면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 뒤 사례비를 주고 차를 태워 보내줬다』<정덕상기자>정덕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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