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목 김기환 “이유 어쨌든 잘못”/“돌아가신분들 영령위해 기도” 『천하에 둘도 없는 악마가 드립니다. 가족은 물론 친구들조차 면회 한번 오지 않았는데 이름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영치금을 받고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중략) 저 또한 슬픔과 기쁨의 인간적인 감정이 없겠습니까. 제가 저지른 사건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되었음을 선생님 앞에 처음으로 고백합니다. (중략) 선생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안녕이 함께 하시길 지옥에서라도 빌겠습니다. 악마의 대리인 김기환』
살인집단 지존파두목 김기환(26)이 최근 서울 서초동 사랑의 교회 집사 이재명(52·사업)씨 앞으로 보내온 봉함엽서 내용이다.
이씨는 온국민을 전율과 분노에 떨게했던 지존파일당과 편지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이씨는 지난 9월말 조금도 뉘우침 없는 표정으로 현장검증에 임하는 지존파일당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TV를 꺼버렸다. 그러나 곧 어려웠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생각나 『내가 진정 기독교인이라면 그들을 회개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다. 6명의 교회 평신도를 설득,「지존파 전도특공대」를 만들었다. 이씨등은 면회가 금지된 지존파6명에게 밤새워 쓴 편지와 1인당 영치한도액인 3만원씩을 넣어주었다. 일부 교직자들까지 고개를 내젓던 살인마들을 향한 전도사업에 구치소측도 처음에는 『교회가 구제해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없느냐』며 냉소적이었다. 그래도 편지와 함께 영치금 솜옷 내의 양말 책등을 열심히 들여보냈다. 10월27일 두목 김이 답장을 보낸뒤 일당의 편지가 30여통 잇달았다. 백병옥(20)은 『가난을 핑계삼아 세상을 저주하고 모든 것에 반항하며 닥치는대로 악행을 저지르다 지금은 벼랑 끄트머리까지 쫓겨와 있습니다.(중략) 앞으로의 재판과 관계없이 열심히 살겠습니다』고 다짐했다. 행동대장 강동은(21)은 『저같은 죄인도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실까요』라고 물었다. 인육을 먹었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김현양(22)은 『사회를 어지럽히던 살인자 김현양이가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꼭 전해주세요. 아침 저녁 제손에 돌아가신 분들의 영령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고 적고 있다.
강문섭(20)은 『이 죄 많은 놈 때문에 고인이 되신 소윤오씨 자녀분을 위해 기도좀 해주세요(소현숙, 소진숙)』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씨는 『답장을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지존파 6명 모두가 신앙고백으로 반응을 보여 기쁘다』며 『지존파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한국교회와 국민에게 보고하려던 계획이 일찍 알려져 유가족 여러분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사랑의 교회 옥한흠(옥한흠)목사는 지난 성탄절예배 때 김현양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나도 처음에 시큰둥했던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관계자는 『지존파가 최근 회개하는 빛이 보이지만 그같은 변화는 사형수들에게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수형생활도 처음보다 많이 좋아져 고분고분한 편』이라고 말했다.<설희관기자>설희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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