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운율에 담은 사랑노래 대부분의 시인에게 사랑은 가장 다루고 싶은 시적 대상이다. 그리움과 이별 그리고 안타까움과 몸부림치는 갈등으로부터 삶의 진실과 그 본질을 투시하는 통찰력을 사랑으로부터 얻기 때문이다.
사랑은 누구나 다루고 싶은 시적 대상이고,어느 시인이고 시에서 한번쯤 다루어 온 것임으로 오히려 참신하고 신선함을 결여하기도 한다. 시인이 사랑이란 시적대상에 집착한다는 사실과, 사랑이란 대상은 참신함을 결여하여 진부함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오세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인이다.
현대문학사에서 근간한 시집「눈물에 어리는 하늘 그림자」에서 그것을 분명하게 토로한다. 『아름다운 사상에 대한 시를 한번 써 보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한국 비평가들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말은 천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시의 본질에는 이 사랑의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오세영은 시의 본질에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사랑을 새롭게 해석하려 하기 보다 기왕의 형식과 율조 그리고 시적 수사로 그 해석을 완성하려 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그러므로 다시 만날 수 없거든 차라리 멀리 떠나갈지니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것이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운 것보다 더 먼 까닭이니라> (「멀리서」에서) 사랑하는 이여,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피리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부드러운 손같이 내 육신을 애무할 때마다 이, 목, 구, 비… 다섯개의 구멍에서 솟아나는 음률> (「당신의 피리」에서) 나는 당신의>
이런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시적 형식으로 사랑에 대한 해석을 보완하여 완성하고 있다. 그러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가슴을 복받치게 하는 새로운 사랑의 해석에 목말라하는 사람에게는 진부함을 안겨준다.
사랑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것을 모두 천박하다고 말하는 한국의 비평가는 없다. 다만 사랑에 대한 시로운 시적 해석을 기대하는 비평가에게 있어 동어반복적인 사랑에 대한 진부한 해석은 천박하다고 말할 따름이다.
오세영의 사랑에 대한 시편들이 천박함과 진부함을 벗어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시적 형식으로 사랑에 대한 해석을 보완하여 완성시키고 있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세영의 시가 사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새로운 형식 속에 담아낼 때 보다 감동적일 것이라는 말을 유보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오세영의 「사랑」 시편들에 대한 우리의 바람이기 때문이다.<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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