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살인극… 공포·악몽 54시간/급유늦자 “승객 더 살해” 협박 긴장/기관총난사 최후저항 아수라장 성탄절 이브인 24일 상오 11시15분(현지시간)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우아리 부메디엔공항 트랩. 항공정비요원으로 가장한 알제리의 급진 회교무장단체(GIA)소속 테러범 4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파리발 에어 프랑스 소속 8969편에 황급히 올라탔다. 12명의 승무원과 2백27명의 탑승객들에게 「악몽의 54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승객들의 증언에 의하면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납치범들은 기내에 오르자마자 조종석을 장악한 뒤 여객기 출구를 봉쇄한채 동요하는 승객들을 위협했다. 이들은 여자승객들에게 스카프를 나눠주고 얼굴을 가리게한 뒤 알제리 보안요원과 베트남 외교관등 2명을 살해, 기체밖으로 내던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알제리 당국은 최정예부대인 「닌자」부대를 급파, 피랍기 주변을 재빨리 포위했다.
알제리당국과 납치범들과의 접점없는 협상은 숨가쁘게 이어졌다. 알제리당국은 주범 야히아의 어머니까지 동원해 설득작업에 나섰지만 별무성과였다. 압델라만 세르프 알제리내무장관은 이때 전격적인 구출작전을 계획했지만 승객의 안전을 고려해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프랑스정부가 본격적으로 사태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인질협상이 소강상태에 빠진 25일 아침부터. 에두아르 발라뒤르 프랑스총리는 성탄휴가를 취소하고 안보관계자들을 긴급 소집했다. 피랍승객중 40명의 자국인이 인질로 잡혀있는데다 여객기 소속국인 프랑스로서는 비상대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
테러범들도 때마침 파리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프랑스정부를 통해 알제리정부측에 우회압력을 가하기 위한게 1차 목적이었지만 만약 체포될 경우에도 사형이 없는 프랑스의 사법제도를 십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부로서도 제3국보다는 자국내에서의 협상이나 인질구출작전이 보다 유리하다고 판단, 알제리 정부에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력을 가했다.
25일 하오 9시30분, 납치범들은 프랑스인을 한명 추가사살한 뒤 결국 알제리정부의 이륙허가를 받아냈다. 이튿날 새벽 2시, 우아리 부메디엔공항을 이륙한 AF 8969편은 이후 1시간10분만에 중간기착지인 프랑스 남부 마리냥 공항에 착륙했다.
무대를 옮긴 인질범들은 공항당국에 급유및 기내식 제공을 요구했다. 그러나 프랑스 당국이 시간을 벌기 위해 중간급유를 의도적으로 늦추자 납치범들은 더많은 승객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탑승객들에게도 폭탄을 꺼내보이며 『우리는 이곳에 죽으러왔다』고 소리쳤다. 기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음습했다. 프랑스정부가 인질 구출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때였다.
26일 하오 5시15분, 프랑스 반테러부대인 GIGN특공요원들이 구출작전을 개시하자 1백70명의 기내승객은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했다. 한 프랑스인 승객은 『사방에서 섬광수류탄이 터지자 승객들은 좌석밑으로 몸을 숨기고 하늘에 운명을 맡겼다』면서 『여기저기서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여성목격자는 『작전이 시작된 뒤 불과 몇분만에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납치범들은 최후의 발악으로 일반좌석에도 기관총을 난사했다. 일부 승객들의 피가 바닥에 튀면서 기내는 순식간에 공포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작전개시 20분만인 5시35분, 기내에는 화약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납치범들은 사망했다. 여러분은 이제 안전하다』는 한 특공요원의 불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54시간 동안 인질로 잡혔던 승객들이 지옥으로부터 한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순간이었다.
알제리 회교원리주의자들이 납치했던 에어프랑스소속 여객기에는 납치범들이 여객기를 공중폭파시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놓았던 것으로 밝혀져 구출된 승객들은 다시 한번 몸서리쳤다.
프랑스경찰은 기내 좌석 두군데에 뇌관이 달린 다이너마이트 20개 두상자를 발견했다고 밝히고 범인들이 기체를 공중폭파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륙를 허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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