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은 그로즈니시를 군사적으로 점령할 모양이다. 그러나 승리의 소식에 잔치를 벌일 러시아인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로즈니의 함락이 현실로 다가올 수록 러시아는 내부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지난 22일에는 군지휘관 수 명이 체첸 침공에 반발하다 해임당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하루 뒤에는 러시아 의회가 전투행위의 즉각적인 중지를 권고하고 평화회담의 재개를 촉구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양식있는 러시아인은 군사적 승리의 허구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체첸의 분리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834년에 체첸민족은 「무리디스」라는 회교단체의 지휘 아래 주권을 선포하고 러시아라는 이단과의 성전에 나섰다가 인구의 3분의 2를 잃었던 적이 있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과 내통한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이 때 체첸 인구의 3분의 1이 기아와 추위로 죽어갔다.
러시아는 이미 백여년 전부터 「인종청소」의 만행을 저질러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태고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민족의 신화와 전설은 무력으로 지워버릴 수 없었다.
제정 러시아의 군대에 쫓겨 산간벽지로 피신한 샤밀의 추종자에게나 스탈린의 명령으로 시베리아 벌판에 내팽개쳐진 체첸 농민에게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체첸인은 거기서 생존의 의미를 찾았고 고통을 인내할 힘을 키웠다.
민주화의 주역이라고 자처하는 옐친이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발틱 3국의 주권선포를 묵인하고 우크라이나의 연방 탈퇴에 동의한 옐친이지만 체첸의 경우만은 예외로 남겨두고 싶은 모양이다.
아마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체첸에는 러시아의 안보에 치명타를 가할 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울러 발틱 3국과는 달리 이슬람과 크리스천 문명이 만나는 위험지대에 자리한 소국인 탓일 것이다. 옐친은 근본주의·분리주의 운동이 코카서스의 회교권 전역으로 퍼져나갈 위험성에 긴장하는 한편 이를 기화로 삼아 지역패권을 넘볼지 모를 이란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서고 무력은 해결책일 수 없다. 오히려 반로 성전에 나섰다 쓰러진 체첸 전사의 제단에는 새로운 영웅의 위패가 놓이고 결사항전의 소식은 신화가 되어 체첸 사회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옐친은 최대의 적이 전선의 반대편에 선 체첸 민족이 아니라 반로감정을 악화시키고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를 확산시키는 자신의 제국주의적 사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러시아 의회의 권고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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