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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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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4.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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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이 에르손 아란테스 도 나시미엔토인 펠레가 월드컵무대에 첫 등장한 것은 58년 제6회 스웨덴월드컵이었다. 당시 18세의 펠레는 스웨덴과의 결승전서 3점을 득점하는 종횡무진의 활약으로 브라질 첫 패권의 주역이 되었고 70년 제9회 멕시코월드컵서 세번째 우승을 차지, 영광의 줄리메컵을 브라질이 영구보관토록 만들었다. ◆펠레가 대표선수로 활약한 12년간은 브라질축구의 최전성기로 4차례의 월드컵서 3차례나 정상에 올라 브라질은 세계의 축구왕국, 펠레는 축구황제로 군림했다. 펠레가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 브라질이 다시 월드컵을 제패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펠레의 천재성과 위대함을 알만하다. ◆펠레의 별명은 데뷔 당시 「축구신동」서 시작하여 「검은 진주」를 거쳐 「축구황제」로 바뀌었는데, 축구황제가 장관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카르도소 브라질대통령당선자가 펠레를 체육부장관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축구왕국 브라질서 프로축구선수가 장관에 오른 것은 두번째로 펠레의 후배격인 지코가 89년에 장관을 역임했었다. ◆유명정치인중에는 선수출신이 많아 레이건전대통령은 대학시절 미식축구를 했고 부시전대통령은 예일대야구부의 1루수에 4번타자 주장이었으나 모두 아마선수에 머물렀다. 뉴저지주출신 민주당의 빌 블래들리상원의원은 미국농구대표로 동경올림픽에 출전했고 뉴욕닉스서 프로선수로 이름을 떨쳤었다. ◆브라질서는 펠레가 입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내각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인기가 치솟는다는 것이다. 공직취임이 처음인만큼 펠레가 체육부장관으로서 어느 정도의 평점을 받을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가 받는 평점에 따라 정치무대에서 전문인의 활동영역이 좌우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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