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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한해 사건기자 방담/불안한 나날… 밖에선 나라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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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한해 사건기자 방담/불안한 나날… 밖에선 나라망신

입력
199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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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방지 말뿐… 책임은 「실종」/안전 불감증·무사안일 도처에/현장마다 무고한 인명희생… 범인 뻔뻔함엔 분통이 ­올해는 대형 사건·사고 「풍년」이었습니다. 대부분이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점과 무사안일에서 비롯돼 충격이 더 컸습니다. 사건 사고 하나하나가 10대 뉴스감이었습니다.

 ­올해 최대의 사고는 역시 성수대교붕괴였습니다. 출근길에 갑자기 다리가 무너져 생사람이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일본 미국 유럽각국에서는 물론, 동남아국가들조차 한심한 사고라는 투로 대서특필했습니다.

 특히 꽃다운 무학여고생들의 죽음은 모두의 가슴을 애절함과 분노로 가득채웠습니다. 한 학생은 이날 아침 아버지에게 잘못을 뉘우치는 편지를 써 가방에 넣어둔 것이 발견돼 부모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습니다.

 ­성수대교 사고는 두 명의 시장을 갈아치웠습니다. 신문사에는 독자들이 매일 수십통씩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어떤 독자는 사건이 지나버리면 곧 잊어버리는 우리사회의 망각증을 불식시키기 위해 붕괴된 다리를 사고장소에 영원히 두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대형사고가 항상 그렇듯이 성수대교사고에서도 서울시와 시공업체의 책임 떠넘기기는 여전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건설당시부터 부실시공 시비가 잦았던 신도시아파트의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일산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기둥이 일부 파손돼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현장은 그야말로 연옥이라는 표현이 적합했습니다. 불기둥이 공중으로 30여 넘게 치솟고 인근 주택 수십채가 삽시간에 화마에 휩쓸려 버렸습니다. 사고현장 주변의 시민들은 비행기 폭격을 맞은 줄 알았다고 기자들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스폭발사고로 불에타 숨진 시신을 놓고 두 가족이 서로 자신의 가족이라고 주장해 경찰이 유전자감식을 의뢰하기도 했지요. 결국 사고현장에서 또 다른 시신이 발견돼 문제는 해결됐습니다.

 ­대형사고 때마다 재발방지를 다짐하지만 정부나 당사자들이 느끼는 사고의 감도는 의외로 낮았습니다. 별 것 아닌걸 갖고 기자들만 호들갑을 떤다는 투의 대꾸도 많았고, 다시 고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사고무신경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사안일주의, 복지부동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걸 실감했습니다.

 ­올해 사건 사고중 가장 오래 계속된 것은 도세사건이었지요. 9월 인천 북구청에서 시작된 세무비리는 부천 서울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대돼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일부 지방세 담당공무원들의 세금횡령이 확인된 셈이죠.

 ­인천북구청 9급 세무공무원의 재산이 수십억대에 달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세무공무원이 돼 1년내에 집을 사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을 확인해 준 셈이었어요. 세도중 일부는 자신의 재산이 수십억인데 횡령한 액수를 못갚겠느냐고 검찰에서 큰소리치기도 했습니다.

 ­부모를 살해하고 범행은폐를 위해 방화까지 한 박한상(23)사건은 참혹성도 충격적이었지만 박이 삼우제 직후 재산상속을 위해 아버지 인감을 찾았고 죄 없는 친구를 끌어 들여 공범으로 몰아댄 몰인간성에 모두가 아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건 초기 경찰과 기자들은 심정적으로 박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뚜렷한 증거가 없었고 「설마 아들이 부모를 죽였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에 말을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지존파사건은 충격을 넘어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는가 하는 자조와 한탄을 몰고왔습니다. 비뚤어진 심성에서 생겨난 적개심이 시체 소각로까지 갖춘 아지트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시체 태우는 냄새를 숨기기 위해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들이 붙잡혀 『오렌지족 야타족을 죽이지 못해 한이 된다』고 독을 품고 말했을 때 온국민의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압구정동의 소위 오렌지족을 상대하는 가게들의 매상이 떨어져 울상을 짓기도 했습니다.

 ­지존파사건은 온보현사건으로 이어졌어요. 온은 가증스럽게도 범행일지까지 기록해 두었습니다. 자수한 뒤에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행까지 말해 경찰과 기자들이 이를 확인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온은 취재기자들에게 자신의 기사가 몇단으로 났느냐고 물어 실소를 금하지 못했어요.

 ­증언보복살인사건을 일으킨 김경록은 결국 자살로 끝을 맺었어요. 김을 찾기 위해 경찰사상 최대 인력이 수색에 동원됐지만 4일 전에 수색을 한 야산에서 시체가 발견돼 경찰수사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사건기자로서 새해는 제발 이런 사건·사고들로 바쁘지 않은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정리=권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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