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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도 못한채 진 내딸…”/성수대교참변 황선정양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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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도 못한채 진 내딸…”/성수대교참변 황선정양 부모

입력
1994.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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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가도 더욱커지는 그리움/집안틀어박혀 술로 절망달래/“무고한 희생 다시없게 위령탑 세웠으면” 유례없는 잇단 대형참사의 충격속에 한 해를 지낸 이 사회는 그래도 「새해는 나아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세모를 맞는다. 그러나 참사로 혈육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수선한 연말은 상실감과 애통함만 더하게 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희생된 무학여고 1년 황선정(16)양의 집인 강남구 일원본동 까치마을 17평짜리 근로자 아파트는 아직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강북에 있는 학교로 버스 통학하던 선정양은 10월 21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6시30분 집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난데없는 비보에 넋을 잃었던 가족들은 채 피지도 못하고 한줌의 재로 변한 맏딸을 떠나 보낸 뒤 애절한 그리움과 세상에 대한 원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새벽 4시면 1남2녀의 잠든 모습에 힘을 얻어 거리로 나서던 아버지 황인옥(40·환경미화원)씨는 술로 애통함을 달래는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성실하기로 소문났던 그는 『못난 아비때문에 지난해초 겨우 아파트를 마련, 강남으로 이사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고 자책을 거듭하고 있다. 선정양은 이사후에도 전학이 허용되지 않아 성수대교를 건너 버스 통학을 해야 했다.

 사고전 봉제공장에 다니던 어머니 염규순(37)씨도 실의에 빠져 일도 그만둔 채 집안에 서만 지낸다. 매일 새벽이면 선정이가 일어나 학교갈 채비를 서두르는 듯하고, 저녁이면 밥을 해놓고 어머니를 맞던 착한 딸의 모습이 떠올라 견딜 수 없다. 염씨는 촛불을 켜놓고 불경을 읽으며 딸의 모습을 지우려 애쓰고 있다.

 『「아빠가 없으면 우리나라는 쓰레기에 파묻힐 것」이라고 위로하던 아이였습니다.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학교를 지척에 두고 힘든 버스 통학을 하면서도 「우리 아파트가 생겼는데 무슨 걱정이냐」며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성수대교 붕괴사고등 숱한 대형참사들은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 충격속에서 대책을 찾는다고 이 사회가 부산한 가운데 어려운 환경에서나마 밝은 미래를 설계하던 한 가정의 행복이 산산이 부서진 사실은 잊혀지고 있다.

 아버지 황씨는 『다시는 무고한 희생이 없도록 다짐하는 뜻에서 선정이가 숨진 다리위에 위령탑이라도 세워 주기를 바랍니다』고 탄식했다. 소박한 삶의 행복을 앗긴 그의 탄식과 바람은 대형참사의 교훈을 기억하는데도 소홀한 이 사회의 현실을 개탄하는 듯 들렸다.【송영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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