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백악관 주변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사고로 백악관 경비관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 다. 경비행기가 백악관 앞마당에 곤두박질치는가 하면 반자동소총 건물벽난사에 총격도주 사건이 이어 발생했고 이번에는 흉기를 소지한 노숙자를 경비경찰이 총으로 쏴 숨지게 했다. 가뜩이나 실추돼 있는 클린턴대통령의 이미지에 이같은 불상사들이 오버랩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일어난 경비경찰의 권총발사사건은 당시현장상황을 극적으로 담은 TV화면이 연일 생생하게 보도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사건은 대충 이렇다. 백악관 건너편 광장에 「잠자리」를 정해 온 한 노숙자가 지난 20일아침 길이 20㎝의 등산용 칼을 소지한 채 백악관 담장쪽으로 뛰어와 4명의 경비경찰을 4∼5사이에 두고 마치 서부영화의 결투장면처럼 대치했다. 경찰관들은 그에게 총을 겨누며 칼을 버리라고 소리쳤다. 몇초후 노숙자가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뒤늦게 도착한 한 경찰관이 그의 다리와 심장을 향해 권총 2발을 발사했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경찰측은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공격용 흉기를 소지한 채로 백악관에 접근한 자체가 벌써 범죄행위이고 경고까지 무시했던만큼 총기사용은 적절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치―발사―상황끝의 TV장면을 본 많은 사람들은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다고 느끼고 있다. 미국이 그토록 외쳐 온, 외교카드로 약방의 감초격이던 그 「인권」이 공룡과 같은 공권력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의 경솔함을 나무라지 않는 미국언론이 오히려 의아스러웠다. 경찰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미국언론은 차라리 공권력의 성벽을 지키는 첨병같았다. 미국사회에서도 인권이 공권력의 권위에 우선할 수는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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