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잇단 격돌… 신경쓸 짬도없다”/정부조직법개정 등 첩첩산중… 곤혹 표정/민정계 대표주자 자임 “지금이 싸울때냐”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민자당의 이한동원내총무가 21일 상오 되뇌인 말이다. 청와대의 개각일정은 잡혀있고 국회의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는 마음대로 안되고…. 답답한 심정을 이총무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총무는 평소 『여당체질』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여당의 책임을 누구보다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철저한 보안과 깔끔한 일처리는 씨름선수를 연상시키는 그의 체격에 걸맞지않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최근 며칠동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김영삼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에서 단행한 정부조직개편을 발빠르게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을 세번째 맡고 있는 이총무는 『이번처럼 어려운 국회는 처음 보았다』고 말한다. 총무이기때문에 피우는 엄살은 아닌 듯하다. 정기국회이후 제기된 현안이 모두 중량급인데다 야당과의 협상구조가 지극히 복잡하기때문에 나오는 얘기로 들린다. 돌이켜보면 이총무의 푸념도 이해할만 하다. 야당의 12·12공세와 여당의 예산안 단독강행처리, WTO가입비준동의안, 그리고 마지막 순서가 김대통령의 정국구상을 뒷받침할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이다. 어느 하나도 쉽게 지나간 것이 없다.
민자당이 지도체제개편 논란으로 들끓던 지난주에 그는 다른 일로 속을 끓였다. 지난 15일 새벽 전날밤을 꼬박 새운 이총무는 집뒤의 구룡산을 오르면서 여전히 묘수찾기에 골몰했다. 폐회를 이틀 앞두고 교착상태에 빠진 정기국회를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문제가 그의 최대 당면과제였다. 이날 하오 국회는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이총무로서는 밤샘고민후 던진 승부수의 결과였다.
이총무는 이날의 사례가 보여주듯 국회운영에 있어서는 강경파도, 온건파도 아니다. 가능한한 여야의 몸싸움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때에 따라서 는 여당의 논리인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운다. 즉 야당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단독으로라도 처리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난 2일 예산안 단독처리는 이총무의 이같은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이총무에게 있어 정부조직법개정안은 대화의 사안이었다. 예산안은 법정시한과 야당의 불참때문에 단독으로 처리했지만 정부조직법은 여야합의로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강행처리 대신 임시국회를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개각을 못하고 공무원이 동요하는 책임이 국회에 있다는 생각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지난주 지도체제개편 문제가 당을 뒤흔들었을때 이총무는 이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정계 대표주자를 자임하는 이총무로서 지도체제문제에 관심이 없을리 없지만 그는 사실 국회때문에 코가 석자였다. 오히려 국회문제를 도외시한채 다른 일에 신경을 집중하는 당지도부에 섭섭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단합할 때』라는 이총무의 말은 여러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는 이총무에게 마지막 고비였다. 그동안 각료해임건의안처리등 각종 표결과 대야협상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던 이총무는 그래서 이번 협상에 더욱 골머리를 싸맸다. 결과만을 따지는 정치에서 과정을 책임져야하는 임무에 외로움도 느끼는듯 했다. 정기국회막판에는 야당의 공세에 지쳐 『정치를 계속해야 할지 회의가 든다』고 말할 정도로 피곤한 처지에 몰렸던 이총무에게 금년은 「산넘어 산」이었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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