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려서 재미있게 본 영화중에 「열사의 무」라는 것이 있었다. 「열사의 무」라니? 무슨 민중운동을 하는 사람 집에서 깍두기를 담그는 것을 연상하면 안된다. 「열사의 무」란 「뜨거운 모래위의 춤」이란 뜻이다. 일본인들이 만든 제목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최근에도 별로 달라진 것같지 않다. 얼마전에는 텔레비전에 「혈과 사」라는 외국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열사의 무」가 나온 시절에는 그래도 한자를 사용하던 터라 뜻을 짐작할 수 있었으나 「혈과 사」는 한글로 쓰여있어 이를 잠시 「구멍과 뱀」으로 오해하기도 했었다. 「피와 모래」라고 쓸 경우보다 글자 한 자를 절약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무관심, 무성의, 그리고 태만일 뿐이다.
음악에서도 일본인들이 만든 것을 그대로 쓰는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일인들은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이를 대부분 뜻으로 읽는다. 우리는 우리 고전에 사용된 문자를 「외국문자」라고 하여 1천여자 정도마저 없애버리려 하면서도 이를 그냥 음으로 읽어버린다. 그리하여 「물위의 음악」이라면 될 것을 「수상의 음악」(국무총리 음악?)이라고 하고 「달빛」이라면 될 것을 「월광」이라고 한다. 아예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 수도 있다. 「춘희」라는 역겹기 그지 없는 제목을 여전히 쓰는가 하면 「총을 사용하는 사냥꾼」은 우리말 사전에 엄연히 「포수」라고 나와 있건만 「마탄의 사수」로 고집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상전의 나라인가? 대체 무슨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 표준말도 못쓰는가?).
나는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논쟁에 끼여들 생각은 없으나 「개방은 시기상조」라는 말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하는 중인데 그것이 안되어 있어 「아직 이르다」는 뜻으로 알기에는 너무 만사태평으로 세월을 보내왔다는 느낌이다. 작품제목 같은 사소한 것만 보더라도 이인직의 「혈의 누」(피눈물)식의 표현이 나온 지 이미 거의 1세기가 되었기 때문이다.<조성진 오페라연출가>조성진 오페라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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