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소비 줄었지만 통상압력 등에 업고/해외시장 “야금야금”/총판매액은 되레 늘어 미국 최대의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의 올 1·4분기 수익은 총12억달러(약9천6백억원)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9% 늘어났다. 필립 모리스측은 예상을 뒤엎은 수익증가의 이유를 『판매전략 덕분』이라고 밝혔다. 필립 모리스는 지난해 4월2일 주력담배 말보로의 가격을 갑당 40센트 내리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월가가 대혼란에 빠졌다. 필립 모리스의 주가는 이날 하루동안에만 14포인트 급락했다. 전문가들은 필립 모리스의 몰락을 예고했다. 93년말까지 내수시장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28억4천만 달러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연간 4백70억달러의 미국내수시장에서 한때 20%까지 떨어졌던 말보로 점유율은 25%로 다시 올라갔다. 주가도 원래 수준을 회복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필립 모리스는 말보로의 수요가 늘어나자 야금야금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인하전 가격으로 되돌아갔다. 필립 모리스의 입지회복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성공사례담에 그치지 않는다. 『담배는 과연 사양산업인가』란 근본적인 되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는 미국내에서 금연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던 해였다. 그럼에도 담배소비는 약감소세에 그쳤다. 필립 모리스·RJR 나비스코·브라운 앤드 윌리엄슨·로릴러드·아메리칸 브랜즈·리겟 그룹등 미담배 메이저가 지난해 광고·판촉에 쏟아 부은 돈은 40억달러(약3조2천억원)에 달했다. 담배판매량이 역대최고였던 지난 81년의 광고·판촉비가 15억달러에 「불과」했던 것에 비교해 봐도 엄청난 액수다. 금연운동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방어일변도 전략을 전면 수정, 대대적인 역공세를 취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연방정부는 물론 각 주정부와 시의회등이 추진하고 있는 금연관련법안 제정 움직임에 맞서 엄청난 물량의 비난 광고전을 벌이는 한편 거물 로비이스트들을 동원, 법안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상·하 양원의원들에게 대규모 정치자금을 제공, 법안상정을 원천봉쇄하거나 이미 상정된 법안의 철폐를 꾀하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이밖에도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온 담배의 해악을 전면부인하거나 금연운동단체들의 주장에 공격적인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저가 담배를 앞세워 시장공략에 나서는가 하면 각종 할인·판촉행사를 통해 판매전략도 다변화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시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 미행정부의 통상압력정책을 등에 업고 태국 일본 한국 대만등 해외시장 장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내 담배소비가 감소세에 있는데도 담배회사들의 판매액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해외시장전략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담배회사들의 공세는 최근 뉴욕 시의회가 제정을 추진해 온 새로운 담배관련 법안을 상당부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완화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기세를 더하고 있다.
뉴욕 시의회는 당초 야외경기장을 포함, 사실상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을 강제화하고 25석을 넘지 않는 식당에서도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만 흡연을 허용하며 2인이상 사무실은 금연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 초안을 마련했었다.
이 초안은 그러나 담배회사들과 담배회사의 지원을 받는 숙박·요식업자단체들의 거센 반발에 봉착했다. 이들은 새 담배관련 법안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뿐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치고 나왔다. 또 뉴욕시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받게 돼 결과적으로 시경제 전체에 큰 주름살을 지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뉴욕시에 본사를 둔 필립 모리스는 새 금연법이 통과되면 본사를 철수하고 각종 문화단체및 사업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공공연히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지난달말 시의회가 내놓은 최종 초안은 35석이하의 음식점은 흡연을 허용하고 사무실흡연도 3인이하의 경우에는 자율권을 부여하기로 하는등 상당부분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담배회사와 요식업단체들은 이마저도 수용할 수 없다며 법안자체를 아예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연법제정 저지공세와 병행해서 담배회사들은 금연운동에 대한 파상적인 역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금연운동과 관련해서 더이상 잃을 게 없다고 판단, 담배의 유해성을 시인도 부인도 않던 자세에서 벗어나 「니코틴이 중독물질이며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 된다」는 금연운동 단체들의 주장은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이 흡연의 위해성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법률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금연운동연합(COALITION ON SMOKING OR HEALTH) 사무국장 조이 엡스타인씨는 『담배회사들의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금연운동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며 『담배회사들은 미국시장의 와해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한편 투자가들로 하여금 국제시장의 성장에 눈을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뉴욕=홍희곤특파원】
◎통계로 본 미담배산업·흡연 현황/흡연사망 연43만명… 2000년 세계시장 반장악
정확한 근거는 밝히지 않고 있으나 미국의 금연운동단체들은 흡연이 미경제에 끼치는 손실을 연간 7백20억달러(약 57조6천억원)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에서 흡연과 관련된 사망자는 매년 43만4천명에 이른다. 에이즈·자살·알코올·코카인·헤로인·크랙·살인·교통사고·화재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숫자다. 측정이 어려운 간접흡연 사망자를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들은 또 매년 비흡연 폐암사망자 3천여명이 간접흡연으로 숨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심장질환 사망자 3만5천∼4만명도 간접흡연의 희생자로 분류된다. 특히 어린이들이 간접흡연의 가장 큰 피해자다. 부모의 흡연으로 18세이하 13만∼30만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으며 이중 7천5백∼1만5천명이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흡연인구는 해마다 감소해왔다. 1965년 43%에 달했던 성인흡연자비율은 91년 25.7%(입수가능한 가장 최근 통계)로 떨어졌다. 그러나 18세이하및 여성 흡연율은 81년 이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금연운동단체들은 담배회사들의 교묘한 광고·판촉이 그 이유라고 지적한다. 담배가 마치 남성다움·성적 매력·또래집단과의 동화·체중감소에 효과가 있는듯이 광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저타르·저니코틴 담배가 건강에 덜 해로운 것처럼 광고함으로써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미국의 담배소비량은 오는 2000년까지 매년 2.5%의 감소가 예상되지만 전세계 소비량은 개발도상국들의 주도로 매년 0.5%의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예상증가분의 거의 모두를 미국담배가 가져가게 된다는 점이다. 전세계 담배소비중 미국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93년 현재 1조8천7백억 개비에서 2000년에는 2조4천4백억 개비로 늘어나 전체 소비량의 46.5%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 미담배업자협회(TMA)의 자체분석이다.
그 배경에는 미행정부의 담배수출 장려정책과 국내담배가격 지지정책이 깔려있다. 연방정부는 매년 1천5백만달러를 담배농가에 지원한다. 여기에다 농무부가 작물보험으로 1천3백만달러, 연구비및 기타지원비로 1천만달러를 지급한다. 대외적으로는 시장개방압력과 함께 수출대상 국가가 국민건강을 이유로 담배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각종 규제를 완화토록 강요하고 있다. 미국 담배회사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나라는 태국 일본 한국 대만이다. 이중 일본과 한국은 중국 미국 독일 독립국가연합 폴란드 인도네시아 브라질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10대 담배소비국이다.
◎미금연운동연 스콧 발린 회장/“금연단체 국제연대 강화해야”(인터뷰)
미국 금연운동연합의 스콧 발린회장은 흡연은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미국심장협회장을 겸하고 있는 발린회장은 금연운동연합이 추구하고 있는「2000년―담배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선 국제적 연대가 강화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금연운동의 물결에 비례해서 담배회사들의 반격도 거세지고 있는데.
『담배업계는 돈이 많고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다. 정확히 30년전 공중위생장관이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고 발표한 뒤 부터 담배업계는 정치인들에 대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해 왔다. 또 예술·문화단체와, 담배에 직접적 관심이 없는 의료단체들을 후원하고 있다. 그 결과 법개정이 저지되거나 약한 법만 통과됐다. 담배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가 가능하기 위해선 각 단체와 대중이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담배업계의 공세전환에 대한 대응책은.
『담배업계의 비윤리적 행위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담배업계는 담배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철저히 숨기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담배업계는 이미 30∼40년전부터 담배가 건강에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담배업계는 흡연을 헌법적 권리의 문제로 끌어가려 한다. 그러나 흡연은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의 문제다. 담배산업과 결탁해 국민건강을 좀먹는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담배업계가 개발도상국들을 비롯한 제3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미정부가 담배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담배산업의 전략은 세계적이다. 담배업계가 국제적 차원에서 철저하게 활동하고 있는만큼 금연운동단체들도 국제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최근「연기없는 담배」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데.
『담배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담배업계는 엉터리 과학자들을 이용해 이를 부인하고 있다. RJR 나비스코가 개발한 연기없는 담배는 흡연의 위험을 부인하는 동시에 대중의 우려를 역이용하는 담배산업의 전형적 전략을 보여주는 제품이다. 저타르·저니코틴 담배처럼 연기없는 담배도 건강에 해롭기는 마찬가지다』【워싱턴=이상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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