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처럼 북한연구가 붐을 이룬 적도 일찍이 없었다. 정부는 물론 국책기관 학계 각단체등이 「격변기를 맞은 북한」을 진단하는 세미나 강연회 토론회등을 앞다투어 개최했다. 하지만 워낙 폐쇄사회인 북한에 대해서 누구도 속시원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개인적인 의견과 주장을 펴는 것으로 끝난 때가 적지 않았다. 광복50주년이 되는 1995년의 새 날이 다가오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옛 그대로이다. 그리고 북한의 내일에 대해서 궁금증은 줄어들 줄 모른다.
김정일은 주석직과 총비서에 언제 취임할지, 경제개혁정책은 어느 정도 펴 나갈지, 미국과 일본의 관계개선 속도는, 한국과의 정상회담에 어떻게 나올지등이 새해로 넘어갈 숙제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슈들에 대해 북한측 스스로 1년간의 정책을 밝히는 것이 바로 신년사로서 이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 갈 수가 있다.
김일성은 1947년1월1일 「전국 인민에 고함」이라는 신년사를 발표한 이래, 1994년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어디까지나 조·미회담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38년간 한 해도 쉬지않고 통치철학을 신년사에 담았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신년사는 지상명령으로 접수가 되고, 한해동안 신년사신드롬이 나타난다. 신년사 학습 궐기집회 지지담화 각계인사 반향등으로 이어진다. 금과옥조처럼 수정되는 일이 없어서, 북한의 한해 살림을 전망하는데 제1의 교과서처럼 보아도 틀림이 없다.
이제 1995년의 신년사는 후계자인 김정일의 몫이 되었다. 벌써 김정일의 처녀신년사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우선 어떠한 공식직함으로 신년사를 낭독하느냐이다. 김일성은 해마다 주석의 이름으로 평양 금수산의사당에서 노동당중앙위원회·중앙인민위윈회·정무원연합회를 향해 약25분간 신년사를 읽어 갔다. 현재 김정일의 공식타이틀은 6개를 가지고 있다(정치국상무위원·비서·중앙 및 군사위원회위원·국방위원장·군최고사령관(원수)). 이번 신년사는 「위대한 수령의 계승자이며 군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발표될 것같다.
우선 담겨질 내용으로는 ▲아버지의 사회주의 위업 계승 ▲경제제일주의 추진 ▲미·일등 유관국과의 관계개선 ▲한국의 통일정책에 대한 비판등일 것이다.
김일성은 1993년에는 『우리는 누구든지 민족자주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조국통일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실한 태도로 나온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통일문제를 협의할 것이며…』라고 남북대화를 강조했다. 이 해 김영삼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만은 못하다』고 민족우선론을 피력했다.
김영삼대통령은 1994년1월1일 『북한동포들도 개방과 개혁의 세계적 조류와 신한국창조라는 민족웅비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해를 맞이하자』고 신년사를 밝혔고, 김일성은 『조국통일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한시도 미룰 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제』라는 마지막 신년사를 낭독한 것이다.
1995년은 조국독립의 환희에 쌓인지 반세기를 맞이한다. 이제 독립의 그 의지와 열정이 통일로 승화될 때이다. 남북한 신년사에 통일에 대한 큰 정치, 그리고 7천만 민족에게 꿈을 가득 심어줄 뜻이 담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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