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시 “중심부개발 장애” 철거론 계기/“부끄럽지만 역사의 현장” … 보존론 맞서/벽화 등 미공개시설 속속 드러나/“베일속의 유물” 뜨거운 관심사로 독일에서 「부끄러운 과거」인 히틀러의 지하벙커 존폐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있다.
이 논쟁은 최근 베를린시당국이 벙커가 위치한 중심가의 개발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번 세기말 수도이전을 앞둔 베를린시는 이곳이 연방정부청사 건립지로 최적이라는 보고서를 펴내면서 지하벙커는 폐기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즉각 전국적인 반발을 초래하며 존폐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논쟁의 초점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벙커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벙커가 중심가의 개발을 가로막는 동시에 세력을 넓히고있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성전(성전)이 될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있다는 논리다. 반면 보존론자들은 부끄럽지만 나치독일은 엄연한 독일역사의 한 부분이며 전후 거의 유일하게 남은 히틀러의 유산인 벙커는 과거의 잘못을 후손에게 가르치는 역사의 거울이 될 수있다고 주장한다.
이같은 논쟁은 이제까지 시당국이 벙커에 대해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터져나오면서 확대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히틀러의 벙커가 그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 한정돼있으며 이마저 거의 파괴된 것으로 알고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달랐다. 지난 90년 통일을 축하하기위한 공연무대를 준비하던 노무자들이 우연히 무너져내린 지하벙커 입구를 발견, 이를 시에 통보했다. 벙커는 동서를 가르던 장벽과 동독쪽 월경자 「사살지대」 지하 3∼6에 깊숙히 묻혀있어 전후 지난 45년간 완전히 베일속에 가려져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당국은 금기시되는 나치유물에 대해 함구, 92년 벙커와 관련한 일부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외에는 아직도 보안이 유지돼왔다.
시가 의뢰해 벙커를 조사했던 알베르트 케른들씨에 의하면 새로 발견된 벙커내 2개의 방은 히틀러의 경호대인 SS친위대와 운전수들이 사용한 시설물이었다. 내부높이가 6, 폭이 30 크기의 벙커는 8겹의 콘크리트로 둘러쳐져 어떠한 폭격에도 견뎌낼 수 있도록 튼튼히 지어졌으며 발견 당시 물이 발목까지 차올라 있었던 것 외에는 완벽하게 보존돼있었다고 케른들씨는 밝혔다. 특히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은 당시 시대상과 나치이념을 대표할 만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있다고 강조했다.
모두 8개인 벽화중에는 친위대장이었던 조지프 디트리히장군과 병사들이 가톨릭 수도원에서 수녀들을 보호하는 장면이 있으며 독일군의 그리스침공을 그린 벽화에는 독일군편에 선 제우스신이 적을 향해 벼락을 뿜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현재 적극적인 보존론을 펼치는 케른들씨는 총통집무실과 히틀러 시신발견 벙커는 연결돼있는 것 같으나 아직 다른 8개정도의 방은 조사조차 되지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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