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현실 다룬 「잠들지 않는 땅」/배봉기/“농촌문제 생명차원 파악”/위기의 농업 살리려는 한 청년의 몸부림 농촌문제를 다룬 희곡 「잠들지 않는 땅」이 가작으로 선정된 배봉기(배봉기·38)씨는 「흔종」 「불임의 계절」이 이미 제13, 14회 서울연극제에서 공연된 극작가이다.
그는 『너무 진지해 극단에서 꺼린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대학로 연극에서는 다루지 않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 역사의 큰 줄기를 희곡으로 표현해왔다.
「잠들지 않는 땅」은 농토를 없애고 복합레저타운을 만들려는 재벌의 시도에 대항하는 농촌 젊은이와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통해 90년대 급격하게 해체되는 농촌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60년대 이농이라는 형태로 해체됐던 농촌은 90년대 또다른 전기를 맞고 있다. UR협상타결로 인한 위기의식이 팽배하고 경제논리가 농촌문제를 다루는 큰 잣대로 등장했다. 농촌은 이제 경제적 지수로 파악하기 보다는 생명의 지속이라는 차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이 작품에 도시에서 교육은 받았지만 농촌을 잊지 못하는 긍정적이고 강건한 청년을 등장시켜 「젊은이는 농촌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통설에 맞선다. 거기에 도시지향적인 그의 애인등 강한 개성의 인물들이 땅의 생명력을 표현해준다.
전북대 국문과를 나와 연세대에서 국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올해부터 광주대 문창과 전임강사로 희곡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연극이 기본적인 진지함과 예술성을 잃어서는 안되지만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블랙 코미디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이현주기자】
◎항일운동 새 시각서 조명 「눈꽃」/우봉규/“대중의 생존의식에 초점”/특정 독립운동가 영웅화 하는 엘리트주의 탈피
『내 세계를 객석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희곡작가의 큰 매력입니다. 무대 자체가 매력인 셈이죠』
한국일보사와 국립중앙극장이 실시한 「2천만원 고료 장막희곡 공모」에서 가작으로 당선된 우봉규(우봉규·34)씨는 역사와 개인이 만나는 지점을 독특한 시각으로 담아온 극작가이다. 89년 월간문학에 희곡 「객사(객사)」, 동양문학에 희곡 「황금사과」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생활을 위해 몇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희곡의 매력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이번 희곡공모에서 가작으로 뽑힌 「눈꽃」은 북만주 조선인 이주민촌 바람골의 촌장 가족 이야기이다. 살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내쫓는 촌장과 공산당원이며 독립운동가인 아들내외의 갈등, 북만주 조선인의 삶이 작품의 주요 구도이다.
그는 일본인과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 노인을 단죄하기 보다는 그 내면을 섬세하게 파헤침으로써 이념이나 구호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했다. 그는 『특정 독립운동가를 영웅화하는 엘리트주의보다는 대중의 생존의식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노인은 아들내외가 조선에 잠입했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탄 속에서 『조국과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골에서 잡초처럼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바로 우리들의 고향이자 조국』이라고 말한다.
경북 상주출신으로 외대 서강대를 거쳐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90년부터 전업작가로 나서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극작가로 존 밀리턴 싱을 좋아하는 그는 『고향 마을의 역사적 체험을 희곡으로 써보고 싶다』며 말을 맺었다.
◎심사평/가작2편 구성 돋보여… 응모작들 문학성 부족 아쉬움
광복50주년기념 장막희곡 공모에는 50여편 가까운 작품이 들어왔다. 5명의 심사위원들이 한달여간 정독해서 2편의 가작을 고르는데는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응모자는 기성작가와 신인이 반반 정도였는데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진지한 공부가 부족한 점이라 하겠다. 많은 독서와 편력, 그리고 깊은 사색이 작품에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사회현상을 피상적으로 훑거나 아니면 역사의 재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작가들의 내면적 고통이 작품에 배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우봉규의 「눈꽃」과 배봉기의 「잠들지 않는 땅」이 남게 되었는데 전자가 독립투쟁기라고 한다면 후자는 농촌문제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해방직후부터 독립투쟁을 다룬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눈꽃」은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항일운동을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즉 지난 시대의 독립투쟁기는 맹목적 애국운동으로 작품을 형상화했는데 이 작품은 종족보존이라는 차원에서 항일운동을 다룬 것이 특징이다. 북만주를 배경으로 극한상황속에서 우리 민족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갈등이라 하겠는데 그것을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했다는데 의미가 있었다. 간결한 언어와 속도, 그리고 긴박감을 주도록 한 구성도 돋보인 작품이다. 생명사상을 나름대로 생각해본 작품이기도 하다.
구성에서 재능을 보이긴 「잠들지 않는 땅」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진부하다고 볼 수 있는 농촌개발 문제를 제재로 택했지만 탈놀이를 적절히 삽입해서 UR이후의 농촌현실을 객관화시켜보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이 작품은 비교적 열린 형식으로 농촌문제를 풀어보려 한 것이 특징이다.
2편의 가작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문학성, 더 나아가 예술성이 두드러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작가들이 너무 문제의식에 집착한 나머지 삶의 본질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해내는데 소홀한 느낌이다.<심사위원장 유민영>심사위원장 유민영>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