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들은 춘사 나운규(춘사 나운규·1902∼1937)를 한국영화의 뿌리요 횃불로 추앙하고 있다. 그는 투철한 민족정신과 영화예술관을 가진 감독일뿐만 아니라 일찍이 우리영화가 미국영화에 맞서 이기는 비결을 터득한 흥행선각자였다. 춘사는 「아리랑」(1926년)을 제작한후 발표한 「아리랑을 만들때」란 회고록에서 당시의 우리영화를 한마디로 따분하다고 평했다. 『한국영화는 졸음이 오고 하품이 난다. 「로빈훗」같은 미국의 대작영화를 본 관객들이 재미없는 한국영화를 볼리가 없다. 시대는 변했고 관객도 달라졌다. 스릴과 유머가 담긴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만든 「아리랑」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춘사의 영화관은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새겨볼만 하다.
90년말 문화부의 영화의 해(91년) 지정에 맞춰 영화감독들이 춘사의 영화정신을 기리고자 제정한 춘사영화예술상이 올해로 5회째를 맞아 17일 시상식이 열린다. 그러나 한해의 한국영화를 결산하는 잔치상을 마련하는 영화인들의 마음은 즐겁지만은 않다. 시상식 경비를 마련하는데 너무 힘들었고 영화인들의 정신적지주가 돼온 춘사가 영화계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이다.
춘사영화예술상 시상식경비는 5천만원. 대기업의 돈을 끌어들여 최우수작품상에 2천5백만원을 주는등 상금만도 2억여원, 총 5억원정도를 쓰는 대종상영화제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액수다. 상금이라야 최우수상인 춘사영화예술인상에 주는 순금제 행운의 열쇠(1백만원정도)가 고작이다. 춘사기념사업회는 시상식경비를 후원에 의존하고 있다. 10여명의 후원회원 가운데 한국영화제작자는 3, 4명뿐이고 나머지는 영화계밖의 사람들이다. 작년까지 후원을 해주던 2개의 영화유관단체가 올해는 손을 끊었다. 영화로 치부한 제작자일수록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영화계 일부에서는 후원요청이 자칫하면 구걸이 돼 춘사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춘사기념사업회는 춘사영화예술상을 대종상처럼 내년부터 대기업의 재정지원을 받아 공동주최하는 길을 모색중이라고 한다. 시상식을 화려하게 치르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발상이지만 이 상이 특정기업에 예속된다는 것은 고려해볼 문제다. 어려운 가운데도 민족영화를 만들어낸 춘사의 영화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춘사의 영화정신을 기리고 본받는 영화예술상으로 가꾸려는 범영화인들의 단결력이 필요한 때다.<문화2부장>문화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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