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관점에 서서 자신을 보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불신이 판치는 국제 무대에서 행동할 때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남의 불안감에 무감각하고 보복의 위험성을 등한시하는 국가는 공동의 이익을 증진시킬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미국의 통상외교를 두고 하는 말이다. 클린턴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자유무역의 확대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에는 보고르 정상회담에 참여하여 아태지역에 개방의 바람을 불어넣었고 이달 초순에는 미국 상하양원의 UR 비준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미주지역이다. 34개국 정상이 모인 마이애미에서 클린턴은 2005년까지 범미주 자유무역지대(FTAA)를 설치하자고 제안, 합의를 보았다.
현재 미국은 다층적 통상외교를 확대 발전시켜가고 있다. 자신이 경쟁력을 갖춘 농산물 시장과 서비스 부문에 개방의 거센 바람을 일으킬 다자주의적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주의라는 「차별」의 장벽뒤에 숨어서 경쟁의 우위를 인위적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연대의 대상마저 하나가 아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날개로 거느린 지정학적 위치와 이민사회로서 가지는 문화적 개방성 덕분에 미국은 운신의 폭이 넓다. 이 지역 저지역을 기웃거리면서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국가를 동반자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미국과 동일한 지정학적 위치에 섰을 때 달리 행동할 국가는 많지 않다. 국가가 이타적일 수는 없다. 기회가 주어지면 어느 국가나 공세적인 자세에서 다층적 통상외교를 펴나갈 가능성이 높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기심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 자신의 이익을 오판할지 모르는 위험성이다. 타국가의 눈에 비칠 자신의 형상을 한번 상상해 보았더라면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다층적 통상외교를 확대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는 클린턴의 신외교에 긴장하고 있다. 아니 다자주의적 통상외교를 펼치면서 개방의 기수로 자처하다가 기회만 생기면 즉각 이지역 저지역에 배타적인 공동시장을 건설하려는―말하자면 이것 저것 다 먹겠다는 심보로 무역정책을 구상하는 무책임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이는 미국으로 보나 세계 전체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과식은 금물이다. 다층적 통상외교에서 처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국가가 방관만 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클린턴대통령은 미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지렛대로 삼아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을 국가 생존전략을 구상할 때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태지역의 자존심에 신경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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