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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박흥진의 명감독 열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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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랑(박흥진의 명감독 열전:13)

입력
1994.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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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영상에 냉혹한 폭력 “섬뜩”/「격노」「M」등 흑백영화고전 연출/유태계… 나치피해 할리우드로 범죄단 두목의 오른팔이자 촌티가 뚝뚝 흐르는 리 마빈이 자기 애인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얼굴에 다짜고짜 펄펄 끓는 커피를 쏟아붓는다. 이같은 몸서리쳐지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 영화 「격노」(THE BIG HEAT·53년·컬럼비아)는 사랑의 자기파괴적 폭력성과 개인의 복수를 자주 다룬 프리츠 랑(1890∼1976년)의 야수적일 정도로 가혹한 걸작필름느와르다.

 다양한 장르의 감독인 랑의 주인공은 대부분 순수와 죄의 한계가 모호한 범죄자, 창녀, 사이코, 부적응자및 무고한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이다.

 폭사한 아내의 복수를 위해 이를 악물고 범죄조직의 핵심을 파고드는 50년대의 「더티 해리」인 「격노」의 형사 글렌 포드도 이런 유형의 인물로 랑은 포드와 주변인물을 통해 폭력 그 자체보다는 폭력에 대한 피해자의 반응을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폭력은 급격하나 간결하다. 결국 악인은 지옥으로 가지만 인간성을 상실하다시피 한 포드의 모습에서 랑의 철저한 염세주의를 감지하게 된다.

 빈 태생인 랑의 작품이 특별히 세트디자인과 화면구성이 탁월한 것은 그가 건축과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1차대전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던 병원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퇴원후 독일영화사에 취직해 각본을 썼다.

 1919년 「혼혈아」로 감독데뷔했는데 여기서 다룬 사랑에 의해 파괴된 남자라는 주제는 이 뒤로도 랑의 중심주제가 된다. 랑의 또다른 주제는 세계지배를 꿈꾸는 지능적 사이코 범죄자(「마부제박사」·22년)와 운명의 냉혹성(「인간사냥」·41년)이다. 랑은 운명의 불가피성에 지배되는 결정론적 세계와 폭력의 정신병리학적 속성에 집착한 「악몽파」였다. 그는 이런 암담한 주제를 독창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는데 주제와 이미지와 스타일묘사에서 극단적으로 경제적이고 직선적이며 간소했다.

 랑의 이같은 창조적 영상처리는 흑백명암촬영이 뚜렷한 「격노」에서도 확연하다. 전국적인 범죄신디케이트를 다룬 폭로영화인 「격노」는 뛰어난 촬영과 불연속적인 음악, 그리고 에누리없는 대사와 좋은 연기가 있는 거칠고 가차없는 영화다. 인정사정없는 폭력을 부드러운 감정에 대한 배려가 돌봐줘 더욱 매력적이다.

 랑의 20년대 걸작은 대형이 지배하는 미래 기계화시대 자본가대 노동자의 대결을 그린 눈부신 시각미의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27년). 사이코 아동살해범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염세적인 스릴러 「M」(31년)은 그의 30년대 걸작. 키가 작고 눈이 큰 살인자 피터 로레의 불안한 연기가 기억되는 명작이다.

 랑은 1933년 「마부제박사의 유언」이 나치에 의해 상영금지된 후 나치선전상 괴벨스에 호출된다. 뜻밖에도 나치영화를 제작해 달라는 히틀러의 청을 전달받은 랑은 자신의 유태계 신분이 들통날까봐 그날 밤 파리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의 어두운 심리묘사는 이같은 나치에 대한 공포와 저항의식에도 연유한다.

 35년에 미국시민이 된 랑의 첫 미국영화는 폭도의 폭력심리와 개인의 복수에 관한 걸작 사회드라마 「분노」(36년). 세트의 총사령관으로 자기 작품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요구한 랑은 스튜디오측과 싸움이 잦았는데 「타당한 의혹」(56년)을 끝으로 미국영화생활을 마감했다. 독일과 미국의 창조적 영상미술가였던 랑은 베벌리힐스에서 여생을 보냈다.<미주본사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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