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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근작시/김선학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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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근작시/김선학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시평)

입력
199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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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의 힘이 만드는 절묘한 가락 소설이 현실에 대응한다면 시는 정서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정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시에는 소설에 담겨질 수 없는 미세한 정서의 가닥이 실핏줄처럼 펼쳐져 있다. 현실에 대응하는 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시가 현실에 응전한다고 해도 결국 정서의 통로를 거쳐서 그것은 완성된다.

 정서란 무엇인가. 어떠한 갈등과 길항도 주관적으로 처리하려는 개인적인 마음의 흐름이다. 또한 바람처럼 모습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바람처럼 흔적을 남길 뿐이다. 바람의 흔적이 물에서 물결로, 나뭇잎에서 작은 흔들림으로, 매달아 놓은 깃발에서 펄럭임으로 나타나듯이 정서가 언어에 실핏줄처럼 엉겨 펼쳐질 때 서정시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정서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흐름은 언어와 만나면서 가락을 만든다.

 시의 이같은 원초적 속성을 꿰뚫어 알고 있는 시인으로 이기철을 들 수 있다. 그의 시어에서 정서의 미세한 가닥이 어느 시인의 시보다 투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시어들이 이루는 진술의 숲에는 유장한 가락이 숨쉬고 있다. 그 가락은 정서가 언어와 만나면서 획득하는 시인의 개성률이다. 이기철시의 이러한 특성은 「서풍에 기대어」 「젖 먹이는 여인」 「작은 이름 하나라도」(이상 「현대시학」12월호)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떤 방황은 우리를 황홀하게 한다 저녁은 투명하고 아미 같은 길들도 저녁땐 구부러져 있다 우리가 닦고닦던 유리의 날들이 우리가 미처 보듬지 못한 놀을 데리고 나보다 먼저 거기에 와 있다 왜 삶은 모나고 죽음은 둥근가를 왜 지상의 나날은 거칠고 천상의 나날은 편안한가를 소멸에 길든 서풍은 대답하지 않는다> (「서풍에 기대어」). 지상과 천상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정서가 언어 속에 흔적을 남기면서 절묘한 가락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가락은 시인의 지상과 천상에 대한 세계인식을 한번쯤 되씹어보게 한다. 모나고 둥근 것으로 지상과 천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사색에로의 권유는 개인의 정서가 가락을 형성하면서 감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기철의 시는 이것을 감당하고 있다.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만큼 아파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작은 이름 하나라도」)라는 진술에서는 시인의 주관적 정서가 보편적 정서로 다가가는 수사의 힘을 느끼게도 된다. 이기철의 시가 가진 흡인력이다.

 이기철의 시는 분명 현란한 수사적 강점과 많은 미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때로 진부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정통적인 시적 미학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정통적 시적 미학이 비판의 표적일 수만은 없다. 정통적인 미학을 파괴하려는 시정신이 오히려 정통적인 미학을 보완하여 진부함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만든다. 이 역설적 진실은 지나칠 수 없는 것이고, 결코 간과해서도 안되는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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