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영향력유지” 나토확대 반발/보스니아 등 외교현안서도 대립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대문제를 계기로 크게 냉각될 조짐을 보이고있다.
지난 5,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뚜렷이 노출시켰다.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나토의 확대문제를 놓고 어떤 국가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러시아를 공격했으며 보리스 옐친러시아대통령은 『아직도 냉전시대의 논리로 불신의 씨앗을 심으려 한다』고 미국을 비판했다.
가시돋친 말을 주고 받은 탓인지 양국 정상은 우크라이나의 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과 제1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Ⅰ)의 발효를 위한 서명식에서 어색한 악수를 나누었다.
양국관계의 냉각조짐은 이미 미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예견됐었다. 차기 미상원 외교위원장으로 내정된 제시 헬름스의원(공화)은 오는 96년이나 98년까지 폴란드 헝가리 체크 슬로바키아등 동유럽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등 대러시아 강경정책을 천명하고 있다.
클린턴행정부는 평화동반자계획(PFP)을 유럽의 잠정적 안보체제로서 추진해 오다 국내정치를 의식한듯 나토의 확대개편쪽으로 정책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토의 확대개편을 동구에서의 영향력 감소로 받아들이고 있는 러시아는 CSCE를 오는 21세기의 유럽안보기구로 개편하고 나토와 유럽연합(EU)을 산하기구로 하는 복안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물론 러시아는 동구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데다 서방의 경제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어 유럽의 주도권을 둘러싼 미국과의 싸움에서 열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를 고립 또는 약화시키는 전략을 계속 추진할 경우 러시아로서는 국익수호차원에서 강경노선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러시아내에서는 나토확대개편문제가 터져나온 이후 의회등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 학계등에서 과거 냉전시대에나 들을 수 있었던 반미주의적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같은 기류를 반영하듯 러시아는 보스니아사태 해결문제를 놓고 이미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등 전과는 다른 외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대이라크 금수해제문제등 각종 현안에서 모스크바는 서방과의 협조를 더 이상 고려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옐친은 아직은 친서방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는 96년 대선 재출마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미국과의 타협적 태도를 포기할 수도 있다.
결국 CSCE정상회담은 미·러관계가 밀월시대를 지나 시련기에 접어들었으며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중대한 시점에 놓이게 됐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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