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할 수 없다. 환자의 합·불법여부를 묻는 것도, 이민국에 알리는 것도 불법이다. 신분제약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아서는 안된다는 선진국다운 인본주의는 본받을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최근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한 멕시코출신 불법이민자는 급성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안고 전전긍긍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쳐 결국 아들을 잃고 말았다. 불법이민자에게 공공서비스제공을 금지하고 신고를 의무화한 캘리포니아주 반이민법187조(일명 SOS법안)가 지난달 통과돼 병원에 갔다가는 불법체류자임이 탄로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얼마전에는 히스패닉계 소녀3명이 피자가게에서 「돈이 있어도 영주권을 보여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는 종업원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전국 각주에서 1백여개 반이민법안이 상정돼 있고, 지난달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공화당은 불법뿐 아니라 합법이민자에게 주어지는 사회보장혜택도 축소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등 미국사회의 반이민정서는 이민전체에 대한 것으로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어느 사회건 먹고살기 힘들어지면 비난의 대상을 찾게 된다. 「보트피플이 세운 이민국가」인 미국의 경우 희생양은 어김없이 나중 온 이민이었다. 특히 종교나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주표적이 됐다. 1800년대 초 가톨릭계 아일랜드인들이 받은 박해나 1882년의 「중국인축출법」, 1920∼30년대의 아시아계 이민제한법안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급인력제공 납세 고용창출을 통해 오늘의 미국을 만들어낸 주역이 이민들이라는 사실은 뒷전으로 접어둔다.
60년대 이후 잠잠해졌나 싶더니 다시 반이민정서가 활개를 치는 걸 보니 미국인들도 살기가 어지간히 팍팍했나보다. 자기 조상의 이민은 「프론티어정신」이고 남들의 그것은 「남의 밥그릇뺏는 행위」로 매도, 「네탓이오」를 외쳐대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세계최강대국 국민답지 않게 초라해 보인다.【뉴욕=김준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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