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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김경원(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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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김경원(화요세평)

입력
1994.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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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활발해지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논의의 대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당위적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가 세계화를 논하기 전에 이미 세계화되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화는 지금으로부터 5년전 1989년 가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혁명적 사건으로 일어났다. 동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주의경제체제의 극적인 몰락은 세계를 그야말로 하나로 만들었다. 21세기가 시작된 것이다」(「계간 사상」94년 겨울호 「세계화」특집 6페이지)

 20세기는 1917년 러시아의 공산혁명으로부터 동유럽과 중국의 공산화로 이어지면서 세계를 제1, 제2, 제3세계로 갈라놓았다. 역설적으로 카를 마르크스는 1848년에 이미 「세계시장」이 조성되었다고 선언했지만,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운 사회주의경제체제와 자본주의진영간의 대립으로 20세기는 세계화가 아닌 블록화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는 21세기에 속한다. 한편으로는 교통, 수송, 정보교환의 기술의 발달로 「세계시장」이 가능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체제의 몰락으로 전세계가 시장경제체제로 통일되었다. 동유럽과 구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공산주의라는 간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국도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고, 냉전시대에 제3세계를 주도했던 인도같은 나라도 드디어 사회주의콤플렉스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포용하기 시작했다(북한등 몇 안되는 닫힌 경제들은 세계화의 거센 역사적 물결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후쿠야마의 관찰대로 이질적 체제대립의 변증법적 역사는 이제 끝나고 하나로 된 세계체제 속에서 끝없는 경쟁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세계화는 다음 세 가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첫째 시장의 엄청난 양적 팽창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40억에 가까운 새로운 인구가 세계시장에 가담한 셈이다. 마케팅전략, 투자규모등 경제행위의 기본전제부터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전지구경제의 시장경제화는 전지구적 경쟁규칙을 가능하게 했고 그 구체적 표현으로 WTO가 출범하게 되었다. 중국이 WTO가입을 그렇게도 강렬하게 희망하는 것을 보면 WTO체제의 전지구적 성격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셋째로 세계화는 경쟁에서의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극대화한다. 이것은 물론 세계시장의 양적 팽창과 전지구적 경쟁규칙의 정착에 기인하는 현상이다. 좁은 마당에서 놀던 때와는 달리 일단 「넓은 마당」에 들어가면 성공의 열매는 과거에 비해 몇배 이상 커지고 실패의 결과는 그만큼 더 비참하게 된다. 지금 아프리카는 후자의 비극에 직면해 있는가 하면 동아시아는 다행히도 전자의 논리를 입증해 주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성공의 「공식」은 있을 수 없다.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고 가변적이다. 다만 성공을 위해서는 한가지 필요조건이 있다. 의식의 세계화 없이 세계화된 세계 속에서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세계를 자신의 삶의 공간으로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세계는 커녕 아직도 민족국가 이전의 부족사회의 전근대적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있다. 우리도 경쟁의 상대를 나라 안에서만 찾는다면 세계경쟁의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계화는 국가의 소멸을 의미하므로 의식의 세계화는 탈국가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현대국가는 점차 기능이 축소되어 궁극적으로 소멸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미래의 가능성과 현재의 사실을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직 국가는 엄연히 존재하며 인간들은 특정한 공간을 중심으로 공동체들을 구성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화는 경제력의 지경학적(GEO―ECONOMIC) 균형을 크게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있다. 개도국들은 현재 세계GNP의 4분의1 정도를 생산하고 있지만 2020년대에는 60%까지 차지하게 되고 동북아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권으로 등장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5백년간의 동서양간 세력균형 추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와 있다. 더 이상 세계무대를 멀리 바라보는 객석의 손님으로 자처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책임도 이제 세계화되어야 한다. 지구환경을 보전하고 세계평화를 유지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선진국이나 강대국만의 역할일 수 없다. 우리 자신의 판단과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세계공동체의 과제들이다. 세계는 이미 세계화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식을 세계화하는 도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사회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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