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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중앙 금융도시 야망/독일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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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중앙 금융도시 야망/독일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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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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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금융축」 재편에 전력투구/각종규제 폐지 외국은행·기관 2백50개 유치 지난 7월중순 미래의 유럽중앙은행이 보유할 금융정책 수단에 관한 국제심포지엄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다.  한스 디트마이어 분데스방크(독일중앙은행)총재는 개막연설에서 『유럽금융상 중요 변혁이 이 도시에서 이뤄진 지 올해가 정확히 1천2백년이 되는 의미있는 해』라고 회고했다.  서기794년 카롤링왕국의 샤를마뉴왕이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통해 순은 1페니히의 무게를 1파운드=12실링, 1실링=12페니히로 정했고 이 새로운 계산법이 1971년까지 영연방국가에서 오래 통용됐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디트마이어총재가 무려 1천2백년의 케케묵은 역사를 거슬러가며 유럽금융사상 프랑크푸르트시가 지니는 비중을 강조한 이유는 뻔하다. 이 심포지엄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등 유럽 각국 중앙은행의 고위간부들이 자리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의 전신인 유럽통화기구(EMI) 유치가 확정돼 정상 가동에 들어가면서 프랑크푸르트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유럽금융의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 3위의 경제력과 「마르크」라는 세계2위의 기축통화를 가진 독일이지만 금융부문에선 그동안 상대적 낙후를 면치못해 국제금융의 중심역할은 줄곧 런던에 넘겨왔다.

 독일은 프랑크푸르트를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금융 중심지로 부각시키는 한편 유럽단일통화의 탄생을 위해 마르크화를 포기한 대가로 금융면에서 유럽연합(EU)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다시말해 런던을 축으로 하는 기존 유럽의 금융판도를 유럽중앙은행과 분데스방크가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인구60만명의 프랑크푸르트시는 시민 10명당 1명꼴인 6만여명이 은행등 각종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전체 4백여 금융기관가운데 외국계 기관이 은행(본점및 지점포함) 1백25개, 금융기관사무소 1백28개등 2백50여개에 이른다.

 독일통일과 동구권 개방에 따른 개발자금 수요가 폭발하면서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이 지금까지 런던에 둔 해외본부를 하나둘씩 프랑크푸르트로 옮기고 있고 EMI유치가 확정되자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는 뉴욕이나 런던 도쿄등 세계 유수의 금융중심지와 비교할 때 그다지 괄목할 만한 실력이 못됐다. 

 지난해 연간 주식거래규모는 6조9천억마르크로 뉴욕등에 이어 세계 4위이고 선물 옵션거래규모도 런던 파리에 이어 유럽3위에 그쳤다. 외환거래는 하루 1천억마르크정도에 지나지 않아 런던이나 도쿄등에 비해 훨씬 처진다.

 독일금융산업이 외국에 비해 뒤처진 근본 이유는 무엇보다 제조업우위라는 전통적인 경제관에서 비롯됐다. 금융은 어디까지나 산업을 지원하는 서비스산업에 머물 뿐 그 자체로 생산에 기여할 순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증시의 내부자거래를 법률로 규제하기 시작한 게 지난 7월 금융시장 발전촉진법이 발효된 이후부터. 아직도 증권거래소가 프랑크푸르트등 7개도시에 각각 나뉘어 독립 운영되고 있어 국가차원의 단일거래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경쟁력있는 금융업이 기업에 저렴한 자금을 공급하고 경제 전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80년대후반부터 독일정부와 분데스방크는 법률 제도등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통해 금융 여건을 국제화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통일후 본부를 베를린으로 옮기도록 규정된 중앙은행법을 무시해가며 분데스방크를 프랑크푸르트에 잔류시킨 결정이나 유럽중앙은행 유치에 그토록 강한 집념을 보인 배경도 모두 이같은 노력의 연장선이다.【프랑크푸르트=유석기기자】

◎「독일말」 국제어회복 노력/“영어에 빼앗긴 위상찾겠다”/동·서구등 1억명이상 사용 “UN서 채택해야”

 『독일어는 세계대전 패전과 냉전때문에 「잃어버린 40년」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 동구개방으로 독일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가 됐다. 독일은 조만간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될 수 있는 입장이므로 앞으로 EU등 유럽내 국제기구 뿐 아니라 유엔에서도 공식언어로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독일 외무부의 하겐그라프 람스도르프문화정책실장은 이렇게 거침없이 강조했다. 지난 92년 독일의 콜총리가 자크 들로르EC집행위원장(당시)에게 서한을 보내 독일어를 영어 불어에 이어 EC의 공용어로 채택토록 촉구한 배경을 묻자 독일어 국제화의 당위성을 이처럼 확고히 전개해 나갔다.

 원래 독일어는 자연과학이나 의학등의 분야에서 수백년간 국제언어로 통용됐다. 그런데 2차세계대전이후 영어가 세계 최고 국제언어로서 지위를 굳혔다.

 독일어는 그 역할을 잃고 오랫동안 종래의 지위를 되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89년 동구가 개방되자 상황이 크게 변했다. 1천7백만∼2천만명에 가까운 독립국가연합(CIS)이나 동유럽 사람들이 독일어를 다시 배우기를 원했다. 국경이 맞붙은 폴란드의 경우 무려 1만명의 독일어교사를 파견해달라고 공식 요청했고 체코 헝가리등 다른 동구국가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현재 유럽에서는 독일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의 동부지역, 덴마크남부등에 사는 1억명이상이 모국어로 독일어를 쓰고있어 언어군으로 따져도 유럽 최대의 언어이다.

 람스도르프실장은 『현재 영어가 제1의 국제언어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유럽국가내에서는 독일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므로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모국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이 독일어 보급이나 국제화 노력을 통해 결코 문화제국주의나 언어제국주의(LANGUAGE IMPERIALISM)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일이후 독일어보급 움직임이 갑자기 가속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그동안 동서독 양쪽이 벌여온 활동을 하나로 묶은 데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유럽처럼 서로 국경이 맞붙은 나라들은 주변국의 국경인접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건너편 국가의 언어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통일이후 독일은 무려 12개 유럽국가와 접경하게 됐다는 것이다.【베를린=고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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