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조정 팽팽 수차례 중재안 “물거품”/서방,내분·민간피해우려 본격개입 못해 20세기말 최악의 민족 분규로 불리는 보스니아 사태를 문답식으로 정리한다.
―내전의 발발 원인은.
『복잡한 민족구성이 내전의 원인이다. 보스니아는 회교도(40%), 세르비아계(32%·그리스정교), 크로아티아계(18%·가톨릭)등 3개 주요 민족이 뒤엉켜있다. 구유고연방 시절에는 티토전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 통치 때문에 민족간의 반목이 분출될 수 없었다. 그러나 티토 사망이후 유고연방이 보스니아를 비롯해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등으로 분열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보스니아는 92년2월 독립여부를 묻는 총선에서 최대민족인 회교계가 압승, 독립을 선포한후 유럽연합(EU)의 승인까지 얻었다. 그러나 두달뒤인 4월초 상대적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가 회교계정권에 승복하지 않고 이웃해있는 세르비아공화국 군대와 함께 수도 사라예보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세르비아공화국은 이후 보스니아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는 민병대를 조직, 내전을 주도하며 영토의 70%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분쟁과정에서 20여만명의 사상자와 2백70만이상의 난민등이 발생하는 엄청난 유혈참극이 빚어지고 있다』
―그간 평화 협상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이유는.
『유엔과 EU는 그간 3차례 이상 평화중재안(영토분할방안)을 마련해 거중조정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 영토의 51%를, 회교계와 크로아티아계가 49%를 차지하는 것이 서방측 중재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세르비아계는 현재의 점령지를 양보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서방측이 본격적인 군사개입을 꺼리는 이유는.
『보스니아는 영토의 70%가 산악지대로 이뤄졌으며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2차대전당시 나치군을 괴롭혔을 정도로 게릴라전에 능하다.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돼 공중폭격도 힘든 상황이다. 더욱이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유고연방으로부터 중화기를 제공받는등 압도적인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
―보스니아사태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입장은.
『나토로 대변되는 서방 군사동맹체는 보스니아사태의 해결방안을 놓고 심각한 의견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내 일부에선 빠른시일내 보스니아 평화협상을 재추진, 세르비아계에 더 많은 영토를 부여하는 선에서 보스니아사태를 매듭짓자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보스니아 평화협상의 재추진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미국이 회교계에 대한 무기금수를 해제하는등 급진적인 정책을 펴는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세르비아계의 지지세력인 러시아도 영국과 프랑스의 입장에 동조, 점진적인 해결책 모색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탈냉전이후 국제분쟁을 효과적으로 억제해왔던 유엔의 권위는 보스니아사태를 계기로 땅에 떨어졌다.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유엔이 설정한 비하치 안전지대를 사실상 점령했는데도 전혀 손을 못쓰고 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사태는 탈냉전이후 두드러진 서방의 자국이기주의와 유엔의 무기력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이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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