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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자고 싶다”(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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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자고 싶다”(장명수칼럼)

입력
1994.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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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있었던 지난주 신문에서 수험생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잇달아 읽었다. 자녀들이 시험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드리거나, 고사장에 엿을 붙이는 어머니는 구시대 어머니들이다. 오늘의 수험생 어머니들은 탈진하여 숨지기도 하고, 『인간답게 자고 싶다』고 외치기도 한다. 김선희씨(48·서울 청담동)는 수능시험을 치르고 온 쌍둥이 아들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쓰러져 그자리에서 숨졌는데, 그의 죽음은 이 시대 어머니로서의 순직이었다. 3남2녀중 1남2녀를 이미 대학에 보낸 그는 막내인 쌍둥이들이 그날 시험을 잘쳤다고 말하자 『이제 너희들 도시락 싸주는 일도 끝났구나』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가 매일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시험공부하는 아들들을 보살폈다고 말했는데, 탈진상태에서 긴장이 풀리며 쓰러진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다른 수험생의 어머니 신승희씨(서울 반포동)는 한국일보 「여자의 마음」에 투고한 글에서 『빨리 시험이 끝나 잠옷 제대로 입고 인간답게 한번 자보고 싶다』고 쓰고 있다. 그는 딸 쌍둥이의 엄마인데, 밤새워 공부하는 딸들을 보살피느라고 새벽이 다 돼서야 잠시 눈을 붙였다가 허둥지둥 일어나 도시락 4개를 싸야하는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도시락에 손도 안대고 돌아온 딸은 반찬에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다며 신경질을 부린다. 그는 화가나서 딸을 야단치려다가 꾹 참는다. 『수험생 엄마들은 모두 죄인아닌 죄인이다. 아이를 야단칠 일이 있어도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봐 참아야 하고, 몸이 천근만근이어도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야 한다』라고 그는 하소연한다.

 자녀들의 대입준비를 경험한 어머니들은 두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고 말한다. 『나도 탈진해 쓰러질것 같았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붕괴직전이었다. 아이도 나도 버틴것이 기적이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입시지옥이 이처럼 악화일로를 달려온 큰 이유중의 하나는 수험생과 그 부모들이 서로를 경쟁상대로만 인식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학부모들은 서로를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피해자로 인식하고, 협력해야 한다.

 학부모 단체, 여성단체들은 탈진한 수험생과 그 어머니들을 구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학부모들은 교육개혁에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가 돼야할 사람들이다. 탈진하여 순직한 엄마, 잠옷 제대로 입고 인간답게 한번 자보고 싶다는 엄마의 절규를 흘려버려서는 안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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