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 때면 대학입학을 위한 학력고사다, 수능시험이다 하여 온통 사회가 떠들썩해진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 본인은 물론 부모나 가족들이 긴장과 초조 속에 마음 졸이며 지내는 모습은 너 나 할 것 없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이름있는 대학의 문은 좁은데 너도 나도 명문대학에 들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일류병」에 걸려 있는 사회상황 아래에서는 도리없이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학력의 우열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시험제도 이외에 달리 묘안이 없기 때문이다. 시험제도는 대학입학을 위한 학력평가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공공단체가 일정한 자격을 부여하는 자격시험의 경우에는 보다 더 중요하다. 각종 법령에 의하여 특정분야에 관한 전문적 업무를 취급할 수 있도록 자격을 인정받는 것은 특별한 권한과 혜택을 취득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자격을 취득하게 되면 당해 분야에 관한한 여느 사람보다 직업선택과 생업에 있어서 우월한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사회가 점차 발달하면서 전문화, 기능화되어 가고 이에 따라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된 「자격」을 필요로 하는 시대상황에서는 어떤 분야이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모든 시험이 그렇지만 특히 공인된 자격취득을 하는데 거쳐야 하는 시험은 엄격한 룰에 따라 공정성과 형평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된다. 시험은 어떤 경우에도 엄격한 규칙에 따라 무사공정과 형평이 항상 유지되어야 한다. 시험이 부정과 정실로 얼룩지면 시험제도 자체의 존재의미는 상실되고 만다.
그런데 얼마전 건축사 자격시험이 치러진 서울시내 몇몇 중학교에서는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시험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시험장소로 빌려준 중학교의 교실벽면 곳곳과 학생들의 책상 위에 시험예상문제의 답을 새까맣게 써 놓은 것을 나중에 어린 학생들이 발견하고 시험관리기관에 항의를 제기한 것이다.
깨끗하게 단장된 벽면과 새로 마련한지 얼마 안된 책상바닥에 깨알같이 예상답안을 볼펜등으로 적어놓아 힘껏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어른들의 커닝흔적을 발견하고 어린 중학생들은 무엇을 연상했을까. 커닝행위는 부정행위이며 절대 용납되지 아니한다는 선생님의 평소 가르침에 회의를 갖지는 않았을까. 또는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시험에서도 어른들은 버젓이 커닝을 하는데 학교내에서 실시하는 시험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어른들도 별 수 없구나 하고 경멸하는 생각을 품지는 않았을까.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우리 기성인들은 스스로의 치부는 살펴보지 아니한 채 걸핏하면 젊은 세대를 나무라는 데 열을 올린다. 오늘날 사회문제로 부상한 청소년지도문제를 거론할 때 흔히 어른들은 세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화의 간격을 이해하기에 앞서 청소년측을 공격하기 일쑤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올바로 가르치고 그들이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 공동체생활에 필요한 의식과 행동을 간직하도록 심어주는 것은 바로 어른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런 관점에서 어른들은 먼저 스스로의 잘못을 되돌아 보고 잘못된 생각과 생활관행을 고쳐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청소년들을 올바로 지도할 자격이 없음은 물론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자격시험 장소에서 교실벽면과 책상바닥에 버젓이 예상문제 답안을 적어 놓고 시험을 치렀다면 이런 정신상태를 가진 사람들은 이미 어떤 공인된 자격도 부여받아서는 안되는 부적격자이다. 비록 실제 시험문제와 직접 연관이 없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하더라도 시험의 공정성을 해치는 부정행위를 시도한 사실 자체만으로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하기에 적합치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더구나 건축사는 각종 건축공사의 설계를 하며 공사의 시공 과정을 감리하고 준공검사를 하는 책무를 맡고 있는 만큼 건축물의 안전확보에 직접 책임이 있다. 건축사는 건축에 관한 전문지식도 구비해야 하나 그보다 못지 않게 원리원칙을 존중해야 하고 직업윤리가 투철해야 한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자격을 취득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다면 그 피해는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현안으로 등장한 부실공사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일부 지각없는 건축사의 감리소홀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감안할 때 건축사 자격시험은 물론, 모든 자격시험은 앞으로 보다 철저하게 관리되기를 바란다.<대한변협회장>대한변협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