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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쇄국주의의 꺼풀/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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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쇄국주의의 꺼풀/이종구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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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그런지 남을, 특히 이웃의 실체를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얕잡아 보고 있다. 얕잡아 본다는 것보다 얕잡아 보려고 은연중 우리의 마음속에 그에 합당한 이유를 자꾸 만들어 내고 있다.○이웃들실체 외면

 생활의 질이 윤택해졌고, 나라의 살림살이 규모도 커졌으며, 세계속에 점하는 국가의 위상도 어느정도는 올라갔으므로 우리가 이만큼 이뤄냈구나 하면서 조금은 성취감을 갖고, 어깨를 으쓱할 법도 한것은 이해는 가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끔씩 우리끼리만의 조용한 제스처로 끝낼 일이다. 우리의 이웃들은 저만치 훨씬 앞서 있거나, 아니면 폭발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우리가 어깨만 으쓱대고 폼만 잡으려 한다든지, 그것이 지나쳐 얕잡아 보려고 마음속에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 내려한다면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물며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가까운 나라 먼나라 할것없이 무차별 경제전쟁을 벌여야 하고, 돈을 앞세워 먹고 먹히는 문화와 의식의 약육강식이 벌어지고 있는 이 마당에….

 우리 선대들은 바로 이웃을 얕잡아 보다가 당했다. 그 시절 백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정신이 없었으므로 그렇다 치고, 나라의 지도자들은 상투를 틀어매고 뭣도 모른채 안방에 앉아 큰소리만 쳐댔다. 이웃의 실체를 알려하지 않았으며 쇄국을 모든 가치의 우선으로 삼았다. 결국 추한 몰골로 나라를 빼앗겼다.

 요즘들어 먹고 살게도 되고, 외국에다 자동차도 팔아먹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다니까, 남을 깔보는 습벽이 슬그머니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일본은 진짜 일본이 아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중국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빙산의 일각처럼 그 거대함은 물밑에 가려 있다. 

 우리가 느끼고 있는 대만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속은 살이 꽉차 있는 게처럼 알차다. 그리고 러시아. 변혁의 소용돌이속에서 잠시 궁핍할 뿐이지 결코 우습게 볼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이웃의 진짜모습을 의식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자꾸 마음속에서는 우리보다 못한 부분만을 강조하려 한다.

○앝잡아 보는 마음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어느 이웃나라에 관한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책에서 그 나라는 경제는 발전했지만 국민의 의식수준은 형편없는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엉터리같은 책이 날개 돋친듯 팔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남을 깔보려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살금살금 자극시키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잠재의식이 그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세계 최고의 제품경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1억2천5백여만명의 국민이 똘똘 뭉쳐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쉬지 않고 궁리」하는 나라이다. 군사강국이며 신문화, 비디오 오디오문화의 대국이다.

 중국은 경제의 폭발적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어느면에서 과학기술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돈을 받고 상업위성을 우주에 쏘아올려 주고 있다.

 대만은 질좋은 잡화류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컴퓨터의 하드 소프트웨어분야등에서는 우리를 앞지르고 있다. 외환보유고와 해외 자본투자는 엄청나다.

○세계화로 가는길

 모진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까. 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이런 이웃들에 끼여있다. 이런 이웃들을 둔 우리는 칼날위에 서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그 이웃들의 실체를 똑똑히 알려하지 않는다. 이런 어리석음은 바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상술로도 이용되는 신쇄국주의, 얼치기 민족주의의 탓일게다. 또다시 국제화 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쇄국주의의 꺼풀을 스스럼없이 벗어버리는 것은 세계화를 위한 백번의 구호보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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