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우리와 함께 일했던 조혜련기자가 39세로 세상을 떠나던 날, 동료 여기자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같다. 그의 빈소에 가려고 자동차로 밤길을 달리며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몇년전 조혜련이 직장을 그만 두려고 할때 말렸던 것이 마음에 걸려요』
『그때 암이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몰라.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유난히 피곤해했지. 차라리 일을 포기하고 엄마노릇이나 제대로 하겠다고 하기에 나도 말렸어. 십년넘게 해온 일을 이제와서 집안살림하려고 포기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설교까지 했지. 그가 병이 난후 나도 그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
물론 그가 쓰러진 것은 직장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가사부담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암에 걸린 것을 좀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쓰러졌다.우리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최선을 다하던 그가 그 모두를 남겨둔 채 떠났다는 것이다.
조간신문 기자이므로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이 많았는데, 어느날 퇴근길에 같은 방향인 나를 자기 차에 태우고 가던 그는 신촌의 리치몬드 제과점에 이르자 『와, 살았다』고 기뻐했다. 그날이 아들의 생일인데, 리치몬드에서 생일케이크를 사다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너무 늦어 제과점이 문을 닫았을까봐 조마조마했다는 것이었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일과 엄마노릇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을 겪고, 애타는 눈물을 쏟는때가 많은지를 미리 안다면, 평생직을 갖겠다는 젊은 여성들의 꿈은 흔들릴 것이다.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전문직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들은 늘 떳떳하지 못하다. 일하는 남자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지만,일하는 여자는 부족한 엄마 부족한 아내라는 죄의식을 갖는다.
조혜련기자는 일 욕심이 많고, 부지런하고, 주변에 늘 섬세하게 마음을 쓰고, 원고마감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기자였다.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온 날도 그는 하루종일 컴퓨터앞에 앉아 자기가 써야할 기사를 다 써놓은 후에야 그 사실을 밝히고, 휴직신청을 했다. 그는 자신이 엄마이고 주부라는 사실이 핸디캡이 될까봐 더욱 열심히 일했던 자존심 강한 전문직 여성이었다.
밤늦게 아들의 생일케이크를 사들고 허둥지둥 달려가던 그 일하는 엄마는 아들의 생일날, 11살 8살짜리 아들과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났다. 39세의 짧은 생을 직업인으로, 엄마로, 아내로, 딸과 며느리로, 최선을 다해 뛰었던 한 여성을 여러분과 함께 기억하고 싶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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