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타다시의 「리어왕」 베이징, 서울 도쿄를 연결하는 베세토연극축제에 참여해 토월극장에서 공연을 마친 일본 SCOT(토가스즈키극단)의 「리어왕」은 세 나라가 공통으로 고민하는 서양 연극의 창조적 수용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험성이 강한 현대 연극이 갖기 쉬운 보편적 한계 즉, 미학적인 표현양식의 탐구가 반드시 풍성한 연극적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공연이기도하다.
곧 분출해버릴 것같으나 철저히 통제되는 에너지, 긴 호흡과 함께 고르고 분명한 발성, 고도의 단련을 통해서 습득한 신체구사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배우들의 몸짓은 창의적 배우훈련으로 이름난 연출자스즈키 타다시의 명성을 유감없이 입증한다.
게다가 미닫이 문을 이용한 드라마틱한 등·퇴장, 세트위에 매달린 문틀을 통해서 내려비치는 조명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조형미, 중세의 태피스트리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질감의 의상들, 격렬하나 절제된 배우들의 동작선이 만들어내는 구도와 리듬감, 시각적 요소들과 부조화하는 듯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의 빈틈없는 구사는 오랜 전통에서 쌓여진 일본 프로극단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잘 다듬어진 표현기술외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깨고 한시간반 동안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리어의 세딸을 남성 배우가 공연하고 극의 상황을 정신병원으로 설정하는 등 고정관념을 깨는 장치들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새로움이며 무엇을 위한 파격인가?
스즈키는 『세계 혹은 이 지구상은 하나의 병원이고, 그속에 인간들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시하며 인간이 어떤 병에 걸려있는지를 해명하는 것이 현대 예술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해석과 예술가로서의 사명은 부분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스즈키의 세계는 인간이 연약함과 악함에 따라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비극성을 리얼하게 드러내면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존엄성을 지키는 자가 마침내 살아남고 질서가 회복되는 셰익스피어의 열린세계에 비해 절망적이도록 닫혀있으며 자기파괴적이다.
병든 영혼들의 닫힌 세계를 파격적인 표현양식에 담아낼 때 관객들을 환호하는 구경꾼으로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가 인도하는 진실에 몰입하기 원하는 관객들은 소외된다. 인생을 연극 무대라고 정의한 셰익스피어의 세계가 인생을 정신병원이라고 하는 스즈키의 연출을 통해 변형된 모습을 보면서 병든 사회와 함께 황폐해지고 뒤틀리는 현대연극의 모습과, 그로 인해 관객과의 공감대가 점점 축소돼가는 현상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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