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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독 공기업」통독후 어떻게 돼가나/민영화 3년 “흑자행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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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독 공기업」통독후 어떻게 돼가나/민영화 3년 “흑자행 시동”

입력
1994.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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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어기기사 「엘프로 그룹」/일반투자가 4인 “신경영도입” 새출발/1백년 전통 「전구생산 외길」 맥잇겠다 제어기기생산업체등 4개 자회사를 거느린 엘프로(ELPRO)그룹은 통독후인 92년 신탁관리청에 의해 민영화된 구동독기업중 하나다. 올해 민영화 3년차를 맞은 엘프로그룹의 모습은 국가의 철저한 계획과 통제하에서 안주하던 조직이 자본주의라는 살벌한 밀림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압사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구동베를린지역의 구석에 위치한 마르차너거리. 동베를린의 공업지역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공산주의의 음산한 잔때를 벗기기 위한 건설공사가 아직도 한창이다. 엘프로사의 7층짜리 사옥은 지은지 얼마 안된 현대식 건물이다. 마치 1백년이 훨씬 넘는 엘프로의 역사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새출발을 하는 작금의 상황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엘프로사가 설립된 것은 지난 1880년이다. 전구업체였던 엘프로사는 구동독체제하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었으나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통일후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됐다. 독일 멕킨지컴퓨터회사의 중역출신 하트무트 에만스회장(42)등 4명의 투자가들은 엘프로사를 신탁관리청으로부터 인수한뒤 대대적인 자본주의식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효율성증대를 최우선과제로 삼은 새주인들은 우선 회사분위기부터 바꾸었다. 린스거리에 있던 기존건물을 투자회사에 팔고 지금의 자리에 4천4백만마르크를 들여 새건물을 지어 회사를 옮겼다. 생산라인도 본사건물앞에 새로 지었다. 분위기를 바꾸면서 감량경영에 들어갔다. 15개였던 회사건물을 5개(3개는 새로 건설중)로 줄이고 종업원도 8천여명에서 2천2백여명으로 4분의3을 내보냈다. 조직도 소비자중심으로 대폭 개편했다. 3천7백만마르크를 투입, 회사설비도 현대화했다. 엘프로의 최대시장이던 동구권시장은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서구유럽시장을 새롭게 개척해 판매를 시작했다.

 구동독출신으로 이 회사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는 판매담당책임자 그로퍼씨는 민영화전후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산주의체제하에서는 전자제어기 하나를 생산하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수시로 중단되는 부품공급을 무한정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품은 하청업체들로부터 구입한다. 요구하는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은 물론이다. 효율성의 증대, 바로 이것이 옛날과 지금의 차이다』

 엘프로그룹은 민영화 첫해 2억4천만마르크의 매출을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3억1천만마르크, 올해는 3억5천만마르크의 매출을 올려 민영화 3년만에 적자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회사의 생산효율성이 증대됐을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의 실질소득도 크게 증가했고 근무환경도 좋아졌다.

 그러나 새로운 불만도 생겼다. 엘프로에서 20년째 근무했다는 한 여성근로자는 이름을 밝히길 꺼리며 이렇게 말했다. 『통일전에는 손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했지만 지금은 이처럼 성능좋은 컴퓨터를 사용한다. 소득도 높아져 자동차도 구입했다. 모든 것이 좋아졌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고 나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속에서 생활한다』【베를린=송용회기자】

◎공작기기사 「게리셔 쉬로더」/“공산치하 비효율성 탈피 가장 어려워”/창업자손자 복귀 「원주인운영」 체제로

 구동독지역인 라이프치히 나운호퍼거리에 위치한 게리셔운트 쉬로더사는 공작기기제작회사다. 1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회사는 규모는 중소기업수준이지만 구동독시절 동구권에서는 손꼽히는 공작기기생산회사로 꼽혔었다. 이 회사 사장인 볼프강 크누퍼씨(67)는 창업자의 손자로 젊은 시절을 실의와 비탄으로 보냈다가 이제 독일통일이후 새로운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파란많은 기업가다. 그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들은 이 회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처음 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생산한 최초의 절삭기와 구동독시절 정부로부터 받은 공로패, 통독이후 다시 소유권을 인정받은 증서등이 결코 순탄치 않았던 회사의 운명을 말해주었다.

 크누퍼씨는 아버지로부터 이 회사를 물려받았으나 지난 64년 구동독정부는 이 회사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 크누퍼씨는 부품담당이사로 임명받아 회사를 떠나지 않아도 됐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하루만에 일개 이사로 내려와 아무런 결정권 없이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89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시작된 통일의 불길은 결국 동서독 분단의 벽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지만 통일후 곧바로 신탁관리청으로 넘어간 이 회사를 다시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신탁관리청을 부지런히 다닌 끝에 크누퍼씨는 91년 다른 투자가들에게 넘어가기 직전 원소유권을 인정받아 회사를 다시 인수했다. 그러나 이미 회사는 사회주의체제하에서 여기저기 비효율의 틈새가 벌어져 있었고 부친과 함께 일했던 유능한 근로자들도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20여년간의 공백은 생각보다 너무나 컸다.

 크누퍼씨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만지기 시작했던 공작기기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살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끝에 2년만인 지난해 5백만마르크의 매출을 올렸다. 직원수 50여명으로는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러나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서 은행빚을 많이 쓴 탓에 적자상태이지만 크누퍼씨는 2∼3년내에 흑자를 장담하고 있다. 34세된 외아들이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크누퍼씨는 독일통일이후 변화된 시장개척에 나서고 아들은 생산문제를 전담하는 분담체제로 가고 있다. 회사가 창업된 이후 최대시장이었던 러시아등 동구권은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크누퍼씨는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최대시장은 구서독지역으로 제품에 대한 반응도 좋기는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 동남아시아수출이 회사부흥의 유일한 길이라고 크누퍼씨는 믿고 있다. 라이프치히 상공회의소의 아시아기업인 친교협회장직까지 맡고 있는 크누퍼씨는 『시장경제는 단점이 많지만 사람을 활력있게 만든다』고 말했다.【라이프치히=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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