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뇌부 보신에 급급… 잇단사고 책임전가/일부 정치권서 군자존심 짓밟고 왜소화”/“후련하다” “반성않고 하나회 한풀이” 갈려 요즘 군내에는 「장군의 연설」이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북영천의 3사관학교에서 있은 오형근소장(육사22기)의 교장 이임연설이 군내에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본인이 직접 쓴 연설을 통해 『군수뇌부가 보신에 급급해 각종 사고가 터지고 사기가 엉망이 되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요지로 군의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소장은 『최근 군은 언론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서 매를 맞았다. 이는 악의에 찬 기도가 아닌지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일부 정치권은 군의 자존심을 짓밟고 사기를 저하시키며 분열을 조장했으며 군을 왜소화시키고 우습게 만드는데 앞장을 섰다. 군의 명예를 짓밟을 수는 있을지 모르나 군대를 오도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급부대는 하급제대의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나 지금 군대에는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군수뇌부는 보호막 뒤에서 자신을 지키는데 급급하고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오늘 우리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우리의 힘으로 군을 지켜야 하며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어 오소장은 『우리 국민은 군을 너무나 모르면서 지난날 군이 엄청난 특혜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내가 한 말은 누구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장군의 한사람으로 본인의 자각이다. 국가안보는 정권 차원에서 결코 다룰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군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소장은 관례와는 달리 이임식사를 문서로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임식에 참석했던 장교들의 입으로 「오장군의 비판」이 옮겨지면서 3사관학교는 물론 국방부, 육군등에 다양한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 3사의 한 영관장교는 『뜻밖의 연설이라 당황했지만 어떻게 들으면 그의 연설은 군에 대한 대단한 애정의 표현으로 들렸다』며 『상당수의 생도들은 후련한 이야기였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 영관장교는 오장군의 이임사를 들으면서 「이충석발언 파문」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난해 7월9일 당시 합참 작전부장이던 이충석소장(육사21기)은 합참의장이 주재한 간부회식에서 『군수뇌부가 소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보신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의 취중 발언은 하나회 제거등 군개혁에 대한 정면 반발로 받아 들여졌다. 결국 하나회인 이소장은 보직해임 되고 군을 떠났다. 이소장의 발언과 이번 오소장의 이임사가 서로 맥락이 닿아 있었다는 것이 군내의 대체적 시각이다.
따라서 오소장의 연설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이제 막 군에 들어온 교육생을 앞에 놓고 조직과 상관을 비난하는 것은 교장의, 군인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K대령은 잘라 말했다. 이임식장에 있었던 다른 장교는 『장군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말을 해야 하는데…』라며 학교내 많은 장교들은 무척 착잡한 심정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오소장의 배경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한풀이」로 들렸다는 것이다.
오소장은 공수여단장과 사단장을 지낸 하나회의 선두주자였다. 육사 럭비부 출신으로 공수부대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청와대 경호대대장도 지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왔으며 강성의 저돌형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해 군개혁 때 3사관학교장으로 전보됐다가 다시 부사령관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한 장성은 『개혁을 한다면서 하나회 출신을 군사교육기관의 책임자로 앉힌 것이 모순이었다. 어떠한 불만도 참는 것이 군인인데 하물며 하나회 출신이 반성은 커녕 공식석상에서 조직을 비난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런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오소장은 『「명에 의해 갑니다」라고 판에 박은 얘기를 했을 뿐이다. 고생한 부하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은 항상 하는 것이다』며 『내입장에서 비판적인 말을 하면 안된다. 군인들끼리 한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집안 식구들끼리 무슨 얘기를 못하겠는가. 내 이임사가 각색된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임사는 원래 들고 가는 것이니 기록으로 남긴 것이 없다』며 『만약 내가 메시지를 보냈다면 부하와 후배에게 보낸 것이지 국민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오소장은 자신이 직접 쓴 원고가 담긴 컴퓨터 디스켓까지 갖고 새임지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손태규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