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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외로운 감나무(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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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외로운 감나무(1000자 춘추)

입력
1994.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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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감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 감나무 밭을 걷는다. 어떻게나 다닥다닥 많이 매달렸는지 셀 수도 없다. 그 풍성함의 감동은 몸과 마음마저 홍시처럼 빨갛게 물들인다. 감은 꽃도 아니며 단풍도 아니지만 그 못지 않게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집 마당 저 집 마당 온동네가 빨갛고 그 감나무 밭은 뒷산 산자락까지 이어졌다. 정겨운 가을 풍경이다. 모처럼 주말여행으로 내장산 단풍구경을 갔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산을 기대했지만 단풍은 이제 겨우 산마루를 넘고 있었다.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오려던 참에 감나무들의 풍성함을 보고 이내 마음이 돌아섰다. 옛날에도 그랬듯이 가을 감나무 풍경은 나를 정겹게 하고 그윽하게 하고 눈물겹게 했다.

 마당의 감나무 그늘은 숨바꼭질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감꽃 필 무렵이면 열매를 맺지도 않은 달착지근한 감꽃을 따먹곤했다. 밤톨만한 땡감을 우려먹고, 쉽게 손이 닿는 밑가지 감부터 떼어냈다. 정작 가을이 되면 맨 윗가지의 감만 남아 있었다.

 금년엔 유난히 감농사가 잘 되었는가하고 조금은 감동해서 동네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빨갛고 화려한 체험 다음엔 어떤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왔다.

 그 마을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마을엔 빨간 감을 따먹을 아이들도 감을 거둬들일 젊은이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도시인들은 고향이 추억 속의 모습으로 가만히 있기를 바란다. 자기들은 도시가 주는 온갖 경제적 문화적 풍요를 누리면서 고향만은 예전의 모양을 간직하기 바란다. 동네 어귀를 들어서면서, 어린시절 왁자지껄했던 감나무 밑의 가을을 떠올린 것도 아마 그러한 기대가 작용한 것이리라.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감나무를 버리고 떠나버린 사람들의 수심을 이해하면서도, 쓸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 가을의 풍성함을 상징하는 감나무들이 이제 단풍을 대신할 관상용의 아름다움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인가.<황영성 조선대 교수·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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