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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증후군/문창재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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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증후군/문창재 사회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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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대교 붕괴사고 이후 여기저기서 사고가 너무 늦었다는 자조의 소리가 들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을 들먹이며 외국 기술진까지 불러들여 안전진단이다, 대책회의다 하는 법석을 보고 내뱉는 냉소들이다.○“사고 너무 늦었다”

 『진작에 그렇게 했더라면 사고가 안났을 것 아니냐』는 타박에 『사고가 났으니 벌집 쑤신듯 야단들이지 아무 일 없었으면 시민아파트 안전진단까지 하겠느냐』는 응수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수사가 실무자 몇사람만 잡아넣고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나자 『정말 사고의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는 자성의 소리다.

 수사본부에 불려간 시공회사 책임자는 『그 때는 공기단축이 지선이었다』고 말했다. 장관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 화려한 준공식을 갖는 것이 최고의 공로요 업적이었던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대변한 말이다. 최고 권력자도 장관 시장도 빨리 공사를 끝내라는 호통 뿐이었지, 늦어도 좋으니 안전한 다리를 만들라는 독려는 마음도 먹어볼 수 없는 시대였다.

 그 시대에 개통된 서울지하철 2, 3, 4호선을 두고 서울시 간부들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장 긴 지하철을 가장 싸게 건설했다』고 자랑했다. 당 건설비는 외국의 선례와 비교도 안될 정도이고, 공기도 엄청나게 짧은 비교자료를 내놓으면서 기네스북 거리라 했었다.

 남북조절회담 북한대표단의 입경을 앞두고 급조된 통일로의 공사기간은 단 2개월이었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슬로건으로 으름장을 놓는 정부의 호령 아래 시공회사들은 24시간 횃불공사를 강행한 끝에 도저히 안될 일을 이루어 내고야 말았다. 콘크리트 양생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선풍기까지 틀어 말려야 했다.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라고 자랑한 경부고속도로도 그렇게 건설되었다. 개통직후 툭하면 꺼지고 패이고 갈라지는 노면을 땜질하느라고 건설비보다 보수비가 훨씬 많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공기단축이 지선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사상누각같은 「한강의 기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말해주는 사례들이다. 속 빈 강정같은 외화내빈 허장성세가 그때 뿐이었다면 좋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불 만난듯 서두르고 대충대충 넘어가며 눈 가리는 부실공사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실공사 추방의 해」라는 플래카드를 대문짝보다 더 크게 써붙인 건설공사현장에서는 여전히 함량미달의 레미콘이 사용되고 철근이 빼돌려 진다. 그래서 엊그제 개통된 서울과 부산 지하철 벽에 물이 새고 금이 갔다. 과천선에서는 이틀이 멀다하고 전동차 정차사고가 났다.

 우리는 학교시절 은근과 끈기가 우리 민족의 특질이라고 배웠다. 아무리 큰 일을 당해도 서두르거나 낙망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민족성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민은 정반대가 되었다. 모든 사람의 입에 「빨리 빨리」란 말이 그치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빨리 빨리 문화」란 말을 만들어 비웃는다. 유럽이나 동남아의 유명관광지에 가면 현지상인들이 「빨리 사」하고 관광기념품을 내민다. 오죽 하면 그들이 그 말을 배웠을까.

○은근과 끈기 실종

 이번 APEC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대접을 받은 것을 서운해 하는 사람이 많다. 빨리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조급해 하는 「빨리 빨리 병」증후군이다. 서두른다고 안될 일이 될 수 없다는, 또 그래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성수대교 참사가 일러주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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