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여인들 삶을 통한 생명·세상에 대한 애착/역설의 미학 91년 중편소설 「씨앗불」로 등단한 뒤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등으로 호평을 받아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90년대의 여성작가로 주목받아온 공선옥씨(31)가 첫 소설집을 냈다. 책 이름은 「피어라 수선화」(창작과 비평사간), 9편의 중단편이 실렸다.
그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남자와 결혼했고, 지금은 두딸과 함께 광주의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첫 소설집에는 작가의 경험과 현실을 근간으로 소외되고 힘들게 살아가는 여인들의 일상사와 의식이 섬세하게 반영되어 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작품 「피어라 수선화」에서는 불현듯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적대감을 느끼는 인간의 미묘한 양면성을 자살과 낙태를 상상하는 서른살 먹은 과부를 통해 암시하고 있다. 어렸을 때 얹혀 살던 큰 집에 불을 질렀다가 호통을 친 큰 어머니를 향한 살의의 기억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생각조차 끔찍한 이 기억은 현재 옆집에 사는 공고생의 공구 가는 소리를 살기로 오해하면서 더욱 심화된다.
「우리 생애의 꽃」은 순직 공무원의 미망인인 화자가 카바레와 강변 술집을 찾아가며 틀에 박힌 일상사의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줄기를 이룬다. 화자의 어머니및 딸과의 관계, 남편 후배의 비난등을 통해 미망인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어린 딸은 화자의 일탈에 대해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 항의」하고 남편의 후배는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하지만 화자의 일탈은 무료한 일상사와 대비돼 기쁨으로 부각되고 또한 이같은 여인의 바람기가 일상적인 생존의 수단일 수밖에 없는 친구 수자를 통해 여러갈래의 의미를 암시한다.
공씨가 이같이 여성의 삶과 질곡, 의식을 그려나가는 배경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일기랄 수 있는 「목마른 계절」에서 한 시인이 내뱉는 『이젠 아줌마도 광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2,30년대의 신파가 그보다 낫거든. 한마디로, 아직도 광주? 웬 광주? 거든』이라는 말은 아직도 작가에게 광주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생각해야 할 사안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공씨는 이 소설집에서 생명에 대한 애착, 인간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루려 했다고 밝혔다. 그러한 방편으로 작가는 참담하고 어두운 역설적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공씨는 『앞으로 여성이라는 특성을 넘어서고 허무주의에 맞서서 인간의 문제를 폭넓게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김병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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