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자유화 합의로 결속 촉진/구체방안 빠져 구속력에 문제 「보고르선언」은 지금까지 정부간 대화창구 정도에 머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실질적인 지역 경제협력체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원칙을 각국 정상들이 천명했다는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각국 정상들이 무역자유화 목표연도를 2020년으로 설정한 이번 선언은 향후 APEC의 결속이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촉진제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자유화목표연도 설정은 정상들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가까스로 이루어진 데다 자유화방안도 앞으로의 각료협의에 위임한다고 명기, 선언적 의미이상의 「알맹이」가 없다는 점을 자체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다.
보고르선언은 정상들의 합의와 약속으로 이뤄진만큼 조약이나 협정에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실무협의과정에서 상당한 구속력이 주어질 것은 분명하다. 또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시작된 지도자경제회의가 이번에 보고르와 내년 오사카회의로 이어지면서 정례화해 앞으로 APEC 결속노력에 각국이 정상차원에서 뒷받침한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다.
보고르선언은 무역자유화 목표연도 설정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 확대의지를 담고 있다. 인력자원 개발, APEC 연구센터, 과학기술, 중소기업, 에너지, 교통, 정보통신, 관광분야등 다각적인 개발협력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같은 협력사업들은 각료급 회의를 통해 진행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각 회원국을 번갈아가며 다양한 형태의 회의가 러시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APEC은 89년 한·호정상회담때 호주가 정부간 협력포럼을 정식 제의한 이후 그해 10월 캔버라에서 통상각료회의로 처음 출범했었다. 따라서 이번 6차회의에 이르러 외무 통상장관뿐 아니라 재무 환경 중소기업 교통 통신등 다양한 분야의 각료급 모임으로 확대된 사실 자체가 출범 6년만의 눈부신 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선언이 우루과이라운드(UR)의 조기 비준과 세계무역기구(WTO)의 내년1월 출범을 재확인한 것도 국제 통상질서의 확립에 상당한 의의를 갖는다.
또 향후 APEC이 무역제도상 새로운 보호장벽을 세우지 않으며 WTO출범에 맞춰 역내 무역자유화작업을 시작한다는 이행시기를 확인한 점등은 자유로운 무역질서 확대추세를 APEC차원에서 선도하겠다는 의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동등한 동반자관계를 통해 「공동체」의 전단계인 「교역그룹」을 지향한다고 선언문이 명시한 것은 APEC이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등 배타적 지역협력체와 다른 성격임을 분명히 밝혀 주목된다.
APEC이 내세우는 「개방적 지역주의」원칙이 과연 향후 세부 협력사항에까지 일관성있게 유지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방적 지역주의가 회원국간에 자유로운 무역 투자교류를 보장하되 비회원국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대우한다면 굳이 회원국이 될 이유가 없어 그만큼 APEC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게 뻔하다.
또 보고르선언은 무역자유화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채 앞으로 각료회의를 통해 준비토록 한다는 식으로 위임하고 있다. 당초 11∼12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6차 각료회의에서 무역자유화 목표연도를 둘러싸고 회원국간에 논란을 벌인 끝에 합의가 무산된 사실을 돌이켜 보면 향후 세부사항 논의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정상회담에서는 무역 자유화의 범위와 정도, 자유화대상 품목, 품목별 이행스케줄, 회원국간 최혜국(MFN)대우문제, 역외 개도국에 대한 특별고려등 구체적 사항은 거의 전부가 각료회의에 넘겨졌다.
현재까지의 진전으로 미루어 APEC은 회원국간 자유화정도가 WTO체제보다 확대되는 반면 NAFTA나 EU보다는 약한 특성을 나타낼 전망이다.
보고르선언은 APEC의 협력을 촉구하는 의미있는 정치적 선언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출범을 뒷받침한 지난 58년 로마조약과 비교해 볼 때 이 선언을 「태평양 경제공동체」의 첫 걸음으로 해석하기에는 제약요소가 많다는 지적이다.【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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