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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통 웨스트포인트에도 탈냉전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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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통 웨스트포인트에도 탈냉전 바람

입력
199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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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다 개인 우선” 생도의식 충격적변화/동구에도 문호개방/매년 정원감축/여성입학 급증/소수민족출신 20% 미국의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가 탈냉전시대를 맞아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뉴욕시에서 허드슨강변을 따라 승용차로 1시간 30분정도 북쪽으로 가면 이르는 웨스트포인트에서는 요즘 군사이론을 익히고 있는 동구권출신 생도들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미국방부가 국무부와 협의를 거쳐 올해부터 웨스트포인트 입학허가대상국 1백13개국에 러시아를 포함시키고 러시아정부에 학생초청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러시아 국내사정으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지난날 서로 핵무기를 겨누던 숙적 러시아의 학생들이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것이다.

 웨스트포인트 공보책임자 제이 엡슨소령은 『중국은 아직 입학허가 대상국가에 올라 있지는 않으나 머지않아 중국에도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라며 『지금같은 국제정세에서 특정국가를 「적」으로 설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고 말해 불과 몇해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가 이곳 웨스트포인트에 일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웨스트포인트는 2백년동안 그들이 겪어온 변모과정을 「전통속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규칙과 기풍을 유지하며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점진적으로 적응해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공산권의 붕괴에 따른 유례없는 세계질서의 대변혁 회오리는 「점진」을 넘어서 웨스트포인트 역사 이래 가장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이곳 관계자들의 말이다.

 역사학교수 제임스 허슨 소령은 『미국과 세계가 변하는 한 웨스트포인트도 변할 수밖에 없다』며 『뉴욕타임스같은 신문잡지를 교재로 삼아 교수학생간에 토론을 벌이는 등 변화된 세계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교육내용을 변화시켜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계학생 송진석군(4학년)은 『1학년때만 해도 소련을 가상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장래에 미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로 중국을 가정해 강의를 하는 교수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냉전의 종식은 새로운 동구권 식구를 웨스트포인트에 등장시켰지만 한편으로는 필연적으로 생도수의 감축을 가져오고 있다. 현재 53만5천명인 미육군이 2년뒤에는 49만5천명으로 줄어들 예정이고 보면 사관생도를 줄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지난 64년 존슨대통령이 2천5백29명이던 웨스트포인트 총정원을 4천4백17명으로 크게 늘린뒤  꾸준히 유지돼오던 웨스트포인트 정원은 90년을 기점으로 의회에 의해 감축되기 시작, 내년에는 4천명이하로 정원이 줄게 됐다. 올해 입학생역시 1천1백43명으로 냉전분위기가 고조되던 81년에 비하면 3백85명이나 줄었다.

 증가하는 우먼파워와 그에 따르는 문제들의 등장도 웨스트포인트의 새로운 모습이다. 75년 처음 입학이 허가된 이래 여성생도는 꾸준히 늘어 현재 전체생도 4천55명 가운데 4백73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입학시험 체력검정기준이 남성보다 낮고, 권투과목 대신 가라테를 배운다든지 하는 것 외에는 남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공사팀과 미식축구경기를 앞두고 단합행사를 하던 선수생도들이 여성생도의 가슴을 만져 물의를 일으키고 3명이 징계를 당한 사건은 웨스트포인트 역시 「성적희롱」등 여성생도의 증가에 따라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무시하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있다.

 웨스트포인트를 방문해 보면 여성생도와 더불어 흑인 스페인계 아시아계 등 소수민족출신생도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1802년 토머스 제퍼슨대통령에 의해 설립될 당시는 백인 중산층자제들의 집합소였던 웨스트포인트에 이제는 소수민족출신생도가 20%를 차지하고 있다. 웨스트포인트측은 『가능한 한 앞으로도 더욱 많은 소수민족출신생도를 입학시키는 것이 기본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보다도 웨스트포인트 생도들의 가치관의 변화일 것이다. 베이루트자살폭발, 리비아항공기테러, 이란인질사건등으로 미국내에 국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있던 80년대초반 이곳에서 공부했던 린치 제이슨대위(환경공학과 조교수)는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봉사가 주된 입학동기였던 과거와 달리 요즘 생도들은 육사를 선택한 이유가 다양하고 개성도 뚜렷하다』며 『타인과 국가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생도들을 대하다보면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았다.【웨스트포인트=김준형특파원】

◎한국계 미육사생도 송진석씨/힘든만큼 성취감… 첫근무 고국지원

 4학년생도로서 웨스트포인트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송진석군(22)은 『군사지식뿐 아니라 학과 운동까지 3박자를 고루 길러야하는 사관학교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그만큼 돌아오는 성취감과 자신감도 크다』고 말한다.

 현재 휴스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따라 2살때 미국으로 이민온 송군은 전과목 A학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휴스턴 클라인 오크고등학교를 졸업한뒤 10대1의 경쟁을 뚫고 91년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웨스트포인트의 한국계학생은 대략 80명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2학년때 육군사관학교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온 것을 비롯, 기회있을 때마다 고국을 찾았다는 송군은 『한국에 가보지 않은 동료들은 한국의 현재 모습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졸업후 첫근무지로 한국을 택해 ROTC출신으로 용산에서 유엔군 의장대중위로 복무하고 있는 형과 함께 모국에서 생활하는게 1차 계획이라는 그는 장차 정치가가 돼 한국인의 긍지와 권익을 신장시키는데 이바지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웨스트포인트=김준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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