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가정대학장을 지낸 최이순선생님이 지난 8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몸을 의대생들의 실습용으로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을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몸을 실습용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에서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항상 자신에게 엄격하고 공공의식이 강했던 그의 삶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결단에 존경을 보내면서도 충격을 받았다. 89년에는 가수 최희준씨의 부인 김현숙씨가 역시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몸을 의대에 기증했다. 『52년동안 살면서 사회에 기여한 것이 없었으니 내 몸을 암 퇴치 연구에 써달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그로부터 육칠년이 흐르는 동안 시신기증, 장기기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뿌리깊은 사상, 특히 시신에 손대는 것을 극도로 금기시하는 풍습에 비춰볼때 그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최근에는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 숨지거나 뇌사상태에 빠진 가족의 시신과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신문에 실리고 있다. 평소에 장기기증을 원하던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경우 특별히 유언을 남기지 못했더라도 그의 뜻을 살려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신에 차마 손댈수 없다』는 사랑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의 생을 뜻깊게 마무리해 주려는 적극적인 가족사랑이다.
한명의 뇌사자가 다른 환자에게 이식할수 있는 장기는 심장·간·췌장·두개의 신장·두개의 안구등 7개나 된다. 어린 자녀, 젊은 자녀를 잃고 애통해 하던 부모들은 자식의 장기를 이식받아 새 삶을 얻는 환자들을 통해서 죽었으나 죽지않은 자식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 아버지의 수첩에서 『내가 죽거든 장기를 기증해 달라』는 유언을 발견하고, 서둘러 각막을 기증한 가족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신장이외의 장기 이식수술은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는등 여러가지 숙제들이 남아있다. 또 본인의 생전의사와 관계없이 뇌사자의 장기이식을 가족이 결정하고, 매매까지 하는 사례에 대한 비윤리적인 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이순·김현숙씨가 자신의 몸을 내놓으면서 던졌던 충격과 감동, 그로 인한 선의의 전파력은 매우 컸다. 악의 풍조만 계속 번져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뿌린 선의의 씨앗은 민들레 씨앗처럼 멀리멀리 번져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단인 장기기증·시신기증의 여건이 이만큼 성숙했다는 것은 희망적인 변화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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