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광복 50주년이 된다. 조국분단의 비애를 간직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어언 반세기가 되었다. 대부분의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에 있어 어느 시기의 반세기쯤의 기간을 잡아 보아도 그 성격은 어찌 됐든 큰 역사적 전환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다. 반세기란 역사적 큰 소용돌이가 몇차례 칠 만큼 길다면 긴 기간이라 할 수가 있다. 민족이나 국가의 발전적 전환이나 성숙성의 심화를 잉태하면서 그 소용돌이가 치는 경우라면 그 민족이나 국가는 역사적 무대의 전면에서 누적적 발전을 해나가는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 뒷면으로 밀려나는 사례를 보아왔다. 한국의 경우 해방이후 조국분단, 동족상잔의 전쟁등 감내하기 어려운 민족적 수난도 겪어 왔으나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상당한 정도의 민주주의 성취와 한때 세계적인 성공사례라고 칭송을 받았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왔다. 이와 같은 해방후 사료들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는 장차 어떠한 성격의 것으로 규정될지 모르나, 광복 50주년을 명년으로 앞둔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펴 보면서 일련의 상념에 잠기게 된다.
공자는 나이 50이면 천명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천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천리를 터득할 만큼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우선 해방 반세기의 경과를 고려의 기준기간으로 잡아볼 때, 그만한 기간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성숙도가 일정한 정착단계에 이르러 민족적 국가적 성숙성이 깊이 있게 축적됐어야만 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겪고 느끼고 있는 여러가지 사례들을 관찰하며 우리의 성숙성의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국민을 침통케 했던 성수대교 사건을 비롯한 수 차례에 걸친 막대한 인명사고를 상기해 본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십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고가 1, 2년새에 몇 차례나 일어났다. 이러한 사건들은 결코 과학기술능력의 후진성 때문이 아니고 기업의 경영자 정신과 기술자정신, 그리고 관료의 공직자정신의 결여에서 초래된 것이다. 인과규명이 엄격히 진행되고 후고의 우려가 없는 철저한 대책이 요구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가 정책에 임할 때 내치, 외교를 불문하고 국민에게 일련의 철학이나 정향성이 좀 더 비춰졌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정치의 경우 국민의 이름을 업은 당리당략의 게임이 눈에 비칠 때 국민감정은 착잡해질 수밖에 없다. 법운영의 경우 국민의 권익보호와 국가질서및 체제유지의 최종 보루로서 국민이 무한신뢰를 할 수 있는 높은 공신력을 지녀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에서 오는 폐단이 도처에서 일어나 국가생산성을 저해하는 사례가 많다. 거의 녕일없이 여러가지 사유로 벌어지는 집단시위가 있다.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시위의 동기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당한 사유인데도 집단행동이 아니면 관청에 의해서 수용되지 않기 때문인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한 사유가 아닌데도 집단행동을 하면 관청의 무사주의에 의해서 요구가 관철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관청이 정당한 사유에 대해서는 인색하지 않게 수용하고 정당하지 않은 사유에 대해서는 군중적 분위기를 극복한 냉철한 대응을 할 때, 비로소 국민적 의식의 훈련이 이루어져 나갈 것으로 믿는다. 정암 조광조가 성균관유생들에게 「논시비는 가하되 정시비는 불가하다」고 충고한 바가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의견이나 요구는 좋으나 그것을 끝장내어 결정해 버릴 수는 없다는 뜻이 될 것이다. 어떤 사안의 최종결정은 그것을 관장하는 당국이 있으니 적법 합절차적 요구를 하고, 대신 당국은 그 요구에 대한 선의의 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보고 느낀 바에서 오는 몇 가지 주문들을 무질서하게 부연했는데 한 마디로 사회 여러 부문에 걸친 국민적 국가적 성숙성에 대한 아쉬움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제 21세기를 준비하면서 사회 모든 기능부문이나 계층, 그리고 국민이 깊은 성찰을 거듭해서 가라앉은 침착성과 심화된 성숙성을 유지해 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로빈슨은 세계사에서의 사례를 들면서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에는 그 중심지가 이동한다고 보았다. 지금 아시아 태평양시대의 도래에 대해서 세계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한국이 거기에서 주역의 일원으로서의 기회를 가지려면 우리의 성숙성이 무엇보다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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