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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바퀴」위의 자리/박무 경제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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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바퀴」위의 자리/박무 경제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4.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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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성수대교사건도 최원석동아건설회장의 「철야조사후 귀가조치」로 일단 막을 내렸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한 보름만 지나면 아무리 큰 사건도 일상속에 파묻혀 잊혀지게 마련이고 또 다른 사건을 맞아 같은 식으로 전철을 되풀이하는게 우리 사회의 습관처럼 돼버렸다. 구포 열차참사나 목포 비행기참사 위도 여객선참사등이 다 같은 식이었다. 사건이 전개돼나가는 모양이나 사후처리를 하는 방식이 모두 「불조리 공식과 그 해법」처럼 판에 박은듯 똑 같은 것이다.○“그저사고만 없길”

 다른 사건때도 그랬지만 이번 성수대교사건도 경직된 공무원사회를 한번 더 경직시켜 오로지 「무사」만을 바라는 복지불동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22만개의 열차바퀴가 구르고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잠도 잘 안오고 밥맛도 없습니다』--. 철도청장을 지낸 고위직 공무원 한 분이 대형참사로 한창 세상이 시끄러울 때 사석에서 한 이 말은 사고에 대한 불안과 오로지 무사고만을 바라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염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도 사고가 잘 나다보니까, 그리고 재산공개다 사정이다 해서 느닷없이 다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까 고위직에 계신 분들이 한결같이 『그저 무사하게, 아무 사고 없이』 임기를 마치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임 최병렬서울시장도 취임 첫회견에서 『물과 공기와 교통문제가…』하고 서울시민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곳을 건드리는 듯 하다가 금방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사고수습과 무사고를 강조하고 나서 방향을 돌린 것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8개월 밖에 안되는 잔여임기에 무슨 일을 벌이기도 어렵겠고 지하철이나 교량이 위태롭다는게 한두개가 아니니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을 법도 하지만 교통과 대기오염과 물과 쓰레기등등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한 마당에 새로 된 시장이 「무사고」에만 신경을 쓰는듯하니 시민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목표 실종

 이런식으로 만날 사고수습이나 하고 사고예방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민생이 좋아지는 것은 언제쯤 구경을 할 수 있게 될까. 좋아지는 것은 고사하고 정부가 민생을 위해 애쓰는 모습만이라도 우선 구경을 좀 해봤으면 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일 것이다. 만날 사고 뒤치다꺼리에 세월 다 보내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허겁지겁하며 2년 가까운 세월이 다 간 것같은 느낌이다. 연초에 그렇게 요란하던 국제경쟁력강화는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당장 다 철폐돼 없어져버릴 것같은 기세이던 규제완화는 어느 정도나 진척이 돼가고 있는지, 공황상태에 임박하고 있는 교통문제는 무슨 대책이라도 준비가 되고 있는지, 사고가 하도 많다보니까 국가적 목표로 내세웠던 중요한 과제들이 모조리 실종돼버린 느낌이다. 「신경제」 「신한국」도 끔찍하게 강조되던 구호들인데 지금은 신경제가 어떻게 하자는 건지 이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외신이 지난 10일 인용 보도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성수대교사건이 한국사회에 유익하게 기여했다고 평하고 있다. 품질개선의식의 범국민적확산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업들은 더 많은 공장뿐 아니라 더 좋은 공장을 짓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불안감 벗어나야

 무사고와 안전만이 전부는 아니며 사고도 교훈을 남기고 유익한 기여를 하는 면도 있다. 이제는 「구르는 바퀴」의 불안감에서 좀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 사고 노이로제에 걸려 모든 공무원들이 잔뜩 웅크리고 앉아 소극적 방어적으로만 일을 한다면 국정과 민생에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진취적으로 좀더 생산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공무원 사회의 대대적인 분위기 쇄신이 있어야 겠다. 국정전반에 걸친 일대 쇄신과 새로운 재출발의 다짐을 위해 결단이 있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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