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하오3시30분(현지시간) 클린턴대통령을 기다리는 백악관 기자회견장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중간선거결과를 「정치적 지진」으로 표현했던 보도진들이 이날 회견에 남다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당연했다. 연설대앞에 선 대통령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지원유세로 인해 잠긴 목소리는 간간이 떨리기까지 했다. 바로 2주일전 같은 자리에서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북핵타결과 관련해 회견을 갖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앨 고어부통령과 파네타비서실장, 스테파노폴로스정책고문, 마이어스대변인등 1급참모들의 표정은 차라리 석고상같았다. 한 외신기자는 『클린턴대통령이 오늘처럼 왜소해 보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클린턴대통령이 선거결과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 것은 매우 솔직하고도 당연한 표현으로 들렸다. 그는 스스로 「클린턴 개혁」의 실패를 겸허하게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민들이 만든 여소야대는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견제심리의 발동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좋다.
따지고 보면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2년간 자신의 선거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미국민들은 「작은 정부」를 통한 변화와 개혁을 원했지만 클린턴대통령의 민주당 정부는 다수당의 정치력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큰 정부」의 방만한 설계를 했던 것이다. 그러니 클린턴행정부의 개혁정책은 그 실효성을 검증받기도 전에 색이 바랬다. 공화당 정권 12년에 식상한 미국민들에게 참신하게 어필했던 클린턴대통령은 불과 2년만에 날개잃은 독수리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이번 선거는 한편으로 진보적 개혁논리를 경계하는 대신 실리적 보수주의를 선호하는 미국민의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현실정치에는 냉소적이지만 정치자체를 외면하지 않는 미국민의 의식수준도 돋보인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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