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스캔들로 지지층 이탈 재촉/경제외교성과 홍보실패도 원인 공화당의 약진으로 결판난 미국의 11·8중간선거는 클린턴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특히 이번 선거가 지난2년간 클린턴의 치적에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나머지 임기는 시련을 겪을수 밖에 없고 재선가도 역시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으로 봐야한다. 무엇보다도 클린턴은 의회에서 공화당의 강력한 견제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집권초기의 각종 개혁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리고 이같은 선거결과는 클린턴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많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들이다. 우선 클린턴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으며 이는 상대적으로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집단의 결속을 가속화시켰다.
대통령당선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각종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주요법안들은 번번이 뒤뚱거렸으며 백악관보좌팀의 내부부조와 개혁을 내세운 정부의 잇단 스캔들등이 유권자들의 이반을 재촉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선거전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 대국민 홍보마저도 실패했다. 막바지에 해외에서 거둔 몇가지 외교적 성과는 선거에서 호소력을 갖지 못했고 경제가 개선됐음에도 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
중간선거가 원래 기본적으로 지방선거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중동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주요지역의 민주당후보 지원유세에 나섬으로써 선거의 성격을 자신에 대한 중간평가로 스스로 규정했다. 클린턴으로서는 북한핵문제및 아이티사태의 해결, 중동의 평화구조 조성등에서 거둔 성공으로 선거에 직접 뛰어드는데 대해 자신감을 가졌을 법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동안「클린턴정치」에 대해 누적돼온 불신을 더욱 부각시킨 셈이 된것이다.
집권초기 의욕적으로 펼쳐진 클린턴정치는 미국이 안고있는 문제에대해 연방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선거전에서 공화당은 이를 「작은 정부」라는 기치로 여지없이 공략했으며 이 빌미는 클린턴이 제공한 셈이다. 의료보호법안의 경우「전체 아니면 전무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밀어붙이다 주저앉고 말았고 범죄법안은 막바지에 내용을 수정했지만 이로인해 흑인계층을 포함, 자신의 지지기반인 진보주의자들을 실망시킨 결과를 초래했다.미국민들은 전통적으로 연방정부의 지나친 개입에대해 거부감을 갖고있는데, 공화당은 이같은 국민정서를 클린턴의 부정적 이미지로 연결시켜 기막히게 활용했다. 이밖에도 로비규제법안이나 선거제도개혁법안등도 의회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의회에서 자신의 주요정책을 펴지 못했던 클린턴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을 더욱 보수적으로 만들었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들을 적지않게 이탈시켰다. 특히 클린턴보다 한술 더뜨는 진보주의자인 힐러리여사의 정치적 입김은 이같은 현상을 더욱 부채질했다.
내부적으로도 소위 「아칸소사단」으로 불리던 백악관참모진의 지나친 물갈이가 혼선을 일으킨 경우가 빈발했다. 데이비드 거겐 홍보보좌관을 퇴진시킨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홍보부재도 이같은 내부전략혼선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아칸소 주지사시절의 의혹인 화이트워터사건, 마이클 애스피농무장관의 퇴진을 빚은 경제스캔들로 특별검사가 2명이나 임명돼 조사를 벌이는 상황도 반클린턴심리를 일으킨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이밖에도 미국사회 전역에 만연돼있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집권당인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 야당인 공화당에 상대적으로 표가 많이 가게 한 것도 민주당참패의 한 요인으로 분석될 수 있을것 같다.【뉴욕=조재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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