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일단 형성되면 나름의 생명을 가진다.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 언어를 구사하고 행동패턴을 변화한다고 순식간에 달라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이 바로 그러한 이미지의 포로다. 그는 지난 두달동안 중동 평화를 중재하고 아이티 군사정권을 축출하면서 「정의의 편에 선 강력한 대통령」상을 구축하려 했지만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개선할 수는 없었다. 민심을 달래기에는 성희롱과 정치자금 비리의 의혹이 대중에게 너무나 커다란 충격이었고 소말리아와 중국과 쿠바에서의 외교적 실책이 너무나 생생하게 국민의 기억속에 남아 있었다.
게다가 클린턴은 케네디전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젊은 미국」이라는 기치 아래 변화를 약속한 정치인이었다. 따라서 의혹과 실책에 따른 국민의 실망은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의 약속은 단순히 당선을 위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민심이반은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가 이번의 중간선거였다. 상·하 양원에서 공화당은 압승했다. 수세에 처한 민주당 후보는 선거에서 대통령을 변호하기보다 그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에 바빴다.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는 클린턴 개인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반항적인 국회를 낳을 전망이다.
내년에 단체장 선거를 치러야 할 한국의 문민정부로서는 남의 일로 일축시킬 수만은 없는 현상이다. 복지불동의 덫에 걸려 개혁이 실종해 버리면 내년의 단체장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한국식 중간평가가 되고 말 것이다.
게다가 북한 핵과 관련한 제네바에서의 북·미 회담을 생각하면 미국의 이번 중간선거는 남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보수적인 공화당이 장악한 미국 상원은 클린턴대통령의 핵외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핵외교의 나약함을 비판하고 한국 정부의 저자세를 한탄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태전개를 반길지 모른다. 마침내 한국과 연대할 만한 세력이 미국 상원 안에 형성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 마저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다. 미국의 강경파보다 더 강경할 수 없고 미국의 온건파보다 더 온건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강경파가 정책대안의 하나로 고려하는 무력제재는 한국을 전화의 대지로 내몰지 모를 위험한 모험인 반면에 미국의 온건파가 덮어두려는 과거핵의 문제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결 상태에 놓인 한국으로서는 민족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한국은 오히려 미국 내에서 벌어질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논쟁에 참여하고 양자를 서로 견제하면서 「중간」을 걸어가는 신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하여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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