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사라진 생명들에 대한 보도 뒤에는 언제나 보상이 거론되고 호프만식 계산법이라는 용어가 따라 나온다. 한 마디로 그 사람이 만일 살아 있었으면 벌어들였을 돈을 미리 모아서 지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돈을 벌지 못하던 사람의 죽음은 더 적게 보상되리라. 하지만 돈을 못버는 사람의 죽음은 더 가벼운 것인가. 게다가 대체 얼마만큼의 돈이 죽음을 감히 보상할 수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돈은 단지 애끊는 애도 뒤의 작은 성의가 아닐까.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 온나라가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얼마전 갱도속에서 광부들이 질식되어 숨진 사고도 그렇다. 갱속의 안전을 위해 장비를 설치하는 일보다 사고 후 보상금을 지급하는 일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에 탄좌들의 안전장치에 소홀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폐수처리를 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더 싸게 먹히기 때문에 공장들은 단속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폐수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수대교의 관리를 맡은 공무원들은 이상없음이라는 허위보고서를 올렸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모두가 돈문제였고 돈이 무엇보다 우선했다는 이야기이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는다 해도, 설사 그 비슷한 강아지를 다시 데려와 키운다 해도 사라진 강아지에 대한 기억이 치유되기까지 사람들은 상처를 겪어내야 한다. 전우주가 몸을 다시 비튼다 해도 같은 강아지 한마리 다시 만들어 낼수 없는데 그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돈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사회에 스며들어 날마다 죄없는 희생자를 만들어 내는 호프만식 세상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공지영 소설가>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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