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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황혼여행(장명수칼럼: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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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황혼여행(장명수칼럼:1741)

입력
199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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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치매증(알츠하이머)에 걸려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했음을 국민에게 고백하는 레이건 전미국대통령(83)의 편지는 슬프고 아름답다. 자신의 여생을 통제불능의 음울한 세계로 끌고 갈 무서운 질병앞에서 그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 줬던 국민들에 대한 감사와 책무, 고난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뇌의 기억세포가 죽어가는 불치성 신경질환인 치매는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암은 육체를 먼저 파괴하지만, 치매는 정신을 먼저 파괴한다. 치매는 노인들만을 공격하고,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심각성이 부각되지 않지만, 환자와 가족이 겪는 장기간의 혼돈과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어떤 병보다도 잔인한 병이다.

 한평생 열심히 일하며 훌륭하게 살아 온 사람도 그 병에 걸리면 한낱 노망난 노인이 되고 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변하여 무슨 짓을 할것인지,주변에 얼마나 폐를 끼치고 천대받게 될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레이건이 깨알같은 친필로 써내려간 「사랑하는 미국인에게」란 편지는 의식이 정상적일 때 작별인사를 남기고자 하는 전직 대통령의 눈물겨운 유서다. 그것은 또 어떤 참담한 상태에 빠지더라도 수치심이나 패배감으로 사실을 감추지 않고, 생의 일부로 받아들여 최선을 다 하겠다는 겸허하고 당당한 인간선언이기도 하다.

 81년에서 89년까지「강력한 미국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미국을 이끌었던 레이건은 건망증, 혼돈, 망상에 시달리며 서서히 죽어갈것이라는 운명앞에 서 있다.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가족도 못알아 보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최소한의 존엄성도 스스로 지키지 못하게될 비참한 앞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알리면서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국민의 따듯한 이해를 구했는데, 그의 편지는 자신이 알코올중독자였음을 고백하고 알코올중독 퇴치운동에 앞장섰던 포드대통령 부인 베티 포드여사를 떠올리게 한다.

 치매나 알코올중독은 치욕이 아니라 병이며, 대통령이었든 퍼스트레이디였든 그런 병에 걸렸다면,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용기를 줄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그들에게서 한결같이 빛난다.

 미국의 치매환자는 4백만명에 이르고, 해마다 10만명 이상이 그 병으로 죽어 전체 사인중 4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들중 하나가 된 전직대통령은『신이 나를 부를 때까지 열심히 살다가 국가에 대한 큰 사랑과 미래에 대한 영원한 희망을 안고 떠날것』이라고 미리 쓴 유서에서 약속하고 있다. 레이건은 재임시보다 더 뜨거운 국민의 존경속에 치매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 슬픈 이야기가 우리에겐 부럽기도 하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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