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현재 2,844억불… 작년보다 80% 증가 미국 경제는 지금 기업들의 합병과 인수(M&A)라는 거센 회오리바람에 또다시 휩싸여 있다. 뉴욕 타임스 경제면이나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하루가 멀다 하고 M&A에 관한 기사들로 어지러울 정도다. 미국 제1의 전화회사 AT&T의 미국 최대 무선통신업체 매코 인수(1백89억달러), 미국 제2의 군수회사 록히드와 제3의 군수업체 마틴 마리에타의 합병(1백억달러), 정보통신회사 바이아콤의 패러마운트 커뮤니케이션 흡수(96억달러), 백화점업계의 양대산맥인 페더레이티드와 메이시의 합병(41억달러), 금융업체 뱅크 아메리카의 컨티넨탈 뱅크 통합(21억달러)…. 최근에 성사된 예만 들어도 M&A의 물결이 얼마만큼 거세게 미국경제에 휘몰아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올들어 10월말 현재 M&A 규모는 총 2천8백44억달러. M&A사상 3번째 규모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1천5백81억달러)에 비해서만 79%이상 증가했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M&A가 최절정을 이루었던 88년의 3천3백억달러 수준에 육박할 전망이다.
어지럽기는 월가도 마찬가지다. M&A를 막후에서 조종하는 증권회사들의 보이지 않는 바쁜 움직임도 그렇지만, M&A를 전후해서 관련기업들의 주가가 춤을 추기 때문이다. 제약회사인 아메리칸 홈 프로덕트의 아메리칸 사이나미드 인수 때 사이나미드의 주식값은 보름만에 63달러에서 93달러12센트로 뜀박질했다. 미국기업들의 이러한 현상을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마디로 「대규모화의 물결」로 표현하고 있다.
○의료·금융등 활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기업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미국경제에서 M&A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80년대에도 미국기업들은 M&A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올들어 진행되고 있는 미국기업들의 M&A양상은 그 성격과 내용이 80년대와는 판이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80년대식 M&A가 경영을 일시에 호전시킨뒤 되파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최근의 M&A는 미래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생산성 향상과 시장점유율 제고, 그리고 경쟁력 확보가 주목적이라는 것이다. M&A분야에서 미국내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증권회사 리먼 브러더스사의 셔먼 R 루이스 2세 부회장도 『최근의 M&A는 미래에 대비한 기업들의 생존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M&A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특히 클린턴행정부가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대규모기업이 갖는 이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경쟁기업이 거대한 공룡이 돼 눈앞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조바심이 기업들의 인수합병을 부채질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정보 통신, 보건 의료, 금융등의 분야에서 M&A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른바 「큰것만이 아름답다」는 논리가 이들 부문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가진 돈이 많고 덩치가 커야만 경쟁 상대방을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 제조업분야의 인수합병은 1천7백93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1천8백건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정보 통신분야는 20% 늘어난 4백2건, 의료보건은 13% 증가한 2백56건, 금융은 5% 증가한 9백39건으로 집계돼 이들 분야에서 M&A가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 통신, 의료 보건, 금융 분야는 기술 및 국내외적 환경변동에 의한 시장구조변화가 어느 부문보다 급격하다. 따라서 이들 분야의 기업은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서로 손잡거나 공격적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특히 정보 통신분야는 전화 케이블TV 데이터뱅크 홈뱅킹 홈쇼핑등 각종 정보통신 오락서비스를 하나의 회선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한다는 앨 고어부통령의 야심찬 정보고속도로(인포메이션 슈퍼하이웨이)구상에 의해 통합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량해고 부작용도
컨설팅 전문회사 매킨지 앤드 컴퍼니의 컨설턴트 림형석씨(32)는 『고정투자 비용이 높은 산업일수록, 기술발달이 신속하고 구조변화가 급격한 분야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며 『최근의 M&A는 합리적인 가격에서 시작했다가 광란의 수준으로 끝났던 과거와 달리 아예 거래가 시작되는 단계부터 성층권에서 가격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M&A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선 M&A에 공식처럼 따르는 대량해고는 당장의 현실이자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남는다는 것이다. 또 기업들의 대규모화가 독과점현상을 빚어 기술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다른 회사가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M&A는 자칫 기업윤리와 경제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M&A를 추진하는 회사들의 입장은 다르다.『새롭게 전개될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들 회사는 말한다.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현 단계에선 통합만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셔먼 루이스 부회장은 『파괴적이고 적대적이었던 80년대 후반의 M&A와 달리 최근의 M&A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M&A는 미국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뉴욕=홍희곤특파원】
◎인수합병(Mergers and Acquisition)이란…/주식매수·재산통합등 통해 두기업을 하나로 만드는것
주식매수나 재산통합 공동출자등을 통해 두개의 기업이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인수합병 또는 합병인수라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그 기업을 흡수하는 것을 인수라하고, 두개의 기업이 재산을 통합해 하나로 합치거나 공동출자를 통해 새로운 기업을 형성하는 것 등을 합병이라고 구분지을 수 있으나 실제로는 두개의 기업을 하나로 합치는 현상을 전반적으로 일컫는 하나의 단어로 굳어지고 있다.
인수합병을 하는 기업간의 관계에 따라 ▲같은 시장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경쟁기업간에 이뤄지는 수평적 인수합병 ▲원자재나 부품의 공급·조달관계에 있던 기업간의 수직적 인수합병 ▲동종제품을 각기 다른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던 기업간의 시장확장인수합병 ▲같은 시장에서 연관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들(예컨대 맥주제조회사와 소주제조회사)간의 생산확장인수합병 ▲전혀 연관이 없는 기업간에 이뤄지는 복합인수합병등으로 나눌 수 있다.
◎리먼 브러더스사 부회장/셔먼 R 루이스2세/“통신산업 가장 주목할 분야”(인터뷰)
기업의 합병과 인수(M&A)에는 증권회사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증권회사는 M&A의 대상 업체 선정에서부터 재원 조달, 집행에 이르기까지 M&A의 전과정에 대한 자문을 한다. 또 M&A의 당사자로 나서 직접 투자를 하기도 한다.
M&A 분야에서 세계 4위·미국내 3위에 랭크돼 있는 리먼 브러더스의 부회장 셔먼 R 루이스 2세는 80년대의 M&A와 최근의 M&A를 투기와 투자에 비유했다. 80년대의 M&A는 남의 돈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한탕을 노렸던데 반해 최근의 M&A는 주로 현금이나 주식거래를 함으로써 금융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이다. 루이스부회장은 가장 주목해야 할 M&A 분야로 통신부문을 주저없이 꼽았다. 그는 『인포메이션 슈퍼 하이웨이(정보 고속도로망)는 아직도 미지수가 많은 분야임에도 통신관련 업체간에 전례없는, 놀라운 M&A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며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더 강하고 효율적인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벨 애틀랜틱과 텔리커뮤니케이션사(TCI),사우스웨스턴벨과 칵스 케이블의 합병이 무산되는등 최근들어 슈퍼 하이웨이를 향한 M&A가 주춤거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늦어도 2005년께면 슈퍼 하이웨이를 향한 M&A의 줄달음이 마무리돼 4∼6개의 대기업이 모든 정보를 독점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4∼6개란 숫자의 근거에 대해선 『적어도 4개 이상은 돼야 독점의 위험을 막을 수 있으며, 정부가 그 이하로는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루이스부회장은 M&A의 부작용과 그에 대한 우려에 대해 조목 조목 반론을 폈다. 그는 『M&A가 독과점의 효과를 노리려 한다는 비판은 일부 대규모 인수 합병에만 해당한다』면서 『M&A는 경영효율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가격인하 요인을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또 독점을 노리는 경우라도 독점금지법이 워낙 강력하고 효율적이어서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량 해고 문제에 대해서도『M&A 이전의 문제가 M&A로서 불거져 나오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면서 『미국은 직업이동이 상시화·보편화돼 있어 대량해고의 충격흡수가 광범하고 신속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운영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따라서 대기업일수록 뛰어난 경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면서도 뛰어난 경영을 하는 대표적 예로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을, 그 반대의 예로는 IBM을 들었다.
그는 『80년대 후반의 M&A는 경제불황이 닥치면서 지나치게 대출을 많이 한 은행등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입었고, 그 결과 대출을 중단함으로써 막을 내렸다』며 『최근 M&A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경기회복세가 이어지고 금융계가 활성화되면서 싼 이자율에 큰 금액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뉴욕=홍희곤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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