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자가 예비며느리인 아들의 연인과 정을 통한다면 한국적 윤리관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불륜의 주인공이 국회의원이라면 더욱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설정이 외국영화에서는 가능하다. 다만 이같은 영화를 우리 사회와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아들의 연인과 예비시아버지의 불륜관계를 그려 논란이 됐던 외국영화 「데미지」가 수입금지 2년만에 최근 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 김동호)의 수입심의를 통과, 연말께 개봉될 예정이다. 공륜은 수입을 허가하는 조건으로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2개장면만을 삭제했다. 공륜측은 「데미지」의 해금에 맞춰 『폭력물은 규제를 강화하고 에로물은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잇달아 터진 지존파·온보현사건이 폭력영상물의 영향을 받았다는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공륜의 이러한 방침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5일 개봉한 한국액션영화 「해적」에 대한 심의를 둘러싸고 영화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폭력이 심한 6개장면(23컷)의 화면과 3개장면의 대사를 공륜이 삭제하자 제작사가 이에 불복, 삭제 당한 장면을 임의로 살려 상영을 강행하려다 공륜측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해적」사건은 제작사측에서 보면 창작의 자유를 억압당한 것이고 공륜으로서는 공권력이 도전을 받은 셈이다.
「데미지」와 「해적」은 내용면에서는 현격한 차이가 나는 영화다. 「데미지」는 성윤리를 다룬 영화이고 「해적」은 주먹세계의 암투를 그렸다. 같은 점이라면 성인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같은 등급의 영화라는 것이다. 「데미지」의 상륙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인 「졸업」과 비교할 때 문민정부답게 심의가 파격적으로 느슨해졌다고 할만하다. 「졸업」은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이 아버지의 동업자 부인과 정을 통하다 그 딸을 사랑하는 줄거리인데 71년 국내개봉 때는 어머니를 숙모로, 88년 재수입상영 때는 이모로 바꾸어 상영을 허가했다.
영화계에서는 공륜의 심의를 아직도 3공시절처럼 「검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여전히 높게 일고 있다. 「해적」의 제작사가 불법인줄 알면서도 삭제된 부분을 되살려 상영을 강행하려했던 것도 심의가 일관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항거로 풀이된다. 공륜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시류에 편승, 고무줄을 심의의 잣대를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문화2부장>문화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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